고양이 같이 치켜뜬 눈으로 먹잇감을 찾는 너는 온몸을 블랙으로 무장한 채 밤 아홉시에 우리 집 앞을 어슬렁거린다. 남자 한 명을 데리고. 네가 발걸음을 옮겨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도 따라 왼쪽 끝방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보면 창문 너머로 황황한 골목이 다 보이기 때문에 네가 뭘 하는 지 알 수 있으니까. 깜깜한 밤에는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가로등만이 밤과 골목을 밝히는데, 암울한 벽은 무서울 정도로 너한테 딱 어울리는 형태다. 너는 벽에 스며든다.
이름이 전원우랬다. 웃기지. 할렘가와는 안 어울리는 얼굴로. 쓰레기더미에 자릴 잡은 동네와 전혀 상관없는 이름을 달고. 코카인을 담은 봉지를 소매 밑에 숨겨오는 전을 매일 이 시간에 본다. 그래서 나는 창문 앞에 눌어붙었다. 전의 거래는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그 구조의 첫머리는 전이 고객들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 집골목에서. 전을 원하는 남자가 달러를 건네면 전은 마약을 쥐여준다. 마약에 눈이 돌아간 남자는 물건을 받아도 쉽사리 돌아가지 않는다. 남자가 전의 귀에 속삭여 무어라 말하면 전이 손을 내민다. 남자가 돈을 준다. 전은 수를 센다. 기대에 찬 눈으로 전을 보던 남자가 전의 손목을 잡아끌자 전은 비소를 짓고 턱을 들어 올린다. 그때 전과 시선이 맞닿는다. 남자의 입술을 머금은 전은 나를 노려본다. 왜? 나방이 들끓는 등 뒤의 가로등이 전을 비추는데 주황빛 얼굴에는 눈만이 노랗게 빛난다. 고양이스럽다. 남자가 전의 머리를 헤집으면 전은 유연하게 고개를 꺾는다. 벌써 열 다섯 번도 넘게 되풀이된 방식이다. 나는 그 횟수나 세고 앉아있고. 지루했다. 전은 지루하지 않나. 필라멘트를 태우는 불은 결국 꺼져버리는 게 순리다. 그러니까 나도. 나도…. 나는 그 꼴을 숨죽여 관전하다 전의 형태를 끝까지 볼 수 없어 방을 나갔다.
전의 이름을 알게 된 건 지난 화요일이었다.
그 새끼가 입은 하와이안 셔츠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입술을 물어뜯고 두 손을 가지런하게 올려놓는 것이 무덤덤해 보이나 즐기고 있는 듯 뻔뻔한 얼굴이다. 아까부터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의문이 들었다. 주근깨 가득이었던 붉은 머리 남자애를 왜 때렸냐는 질문에 어울릴만한 대답인가 저게? 여길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전이 여기 있는 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나는 영영 그 문을 열지 않았을 거라고. 바보 같은 짓을 했다. 내 잘못으로 꼽을 수 있는 바보 같은 짓. 멀린 선생님께 볼일이 있어 아무 의심 없이 교사실 문을 연 것. 그리고 그곳에 거짓말처럼 전이 있었다는 것. 그래서 전의 이름이 전원우라는 걸 알아버리고야 만 것. 나의 잘못이다. 전원우라는 덫에 발목이 잡혀버릴 줄 몰랐던 나의.
사실 나는 봤다. 그래서 안다. 전이 주근깨를 왜 때렸는지. 그날 전은 뒷장에 LSD를 묻힌 우표와 LSD를 덧바른 캔디를 거래했고 주근깨는 돈을 주고 꺼져야 했다. 하지만 주근깨는 전에게 다른 걸 요구했다. 사람이 그렇게 많이 지나다녔는데 눈에 띄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하와이안 셔츠 붉은 머리 주근깨는 전의 검은 옷을 벗기려 들었다. 단추를 풀며 뒤로 밀착해 전의 입술을 씹을 듯이 물었다. 말도 없이. 그걸 나는 또 방안에서 숨죽여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경찰을 불러야겠다는 충동이 들었다. 그런데 때마침 전이 남자의 턱을 올려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뒤로 자빠져 나뒹구는 주근깨.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려가서 침을 뱉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내가 늦었다. 전이 벌써 그 얼굴에 침을 뱉곤 몸을 발로 찼으니.
그러니 전은 멀린 선생님의 제자를 때렸다는 이유로 불려와서 심문을 받았다. 사실 심문이라 하기엔 뭐하다. 멀린이 물으면 전은 실제와 빗나가는 단어들만 선택해 말했다. 나는 그렇게 시간을 죽여가는 전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입을 열었다. 정당방위예요. 그 순간 전도, 멀린도 나를 보고 말문을 잃는다. 그놈이 먼저 얘 만졌어요. 더러운 손으로. 전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탐색한다. 목격자인 나는 당연히 발언해도 되지 않나. 제가 봤어요. 내가 덧붙였다. 멀린은 잠시 멍하더니 살풋 웃었다. 이어서 호기로운 제안을 건넨다. 전을 감시하라는 부탁. 부탁인 척 하지는 않았으나 내가 듣기에 속뜻이 그랬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전에게 붙으라니. 주인 없는 빈집에 몸을 욱여넣는 꼴이다. 안정감이 없다. 나는 무표정인 전을 봤다. 그때 멀린이 기록부를 내밀었고 전은 프로필을 적는다. 거의 모든 문항에 X표를 갈겨썼다. 난리 났네. 중얼거리자 전이 헛기침을 했다. 얼굴을 보니 날선 눈으로 뭘 보냐고 묻는 거 같길래 자동으로 입을 다물었다.
전이 일어나 나가버렸다. 쾅, 하고 닫힌 문이 살짝 떨린다.
야. 앞서가는 뒷모습을 뒤따라 가다 불러도 대답이 없어 전의 앞에 섰다. 그제야 전이 나를 본다. 말 걸지마. 일정한 뜸을 두고 열린 입에서 나온 말은 단순하다. 입 옆으로 붉은 상처가 눈에 띄어서 손을 가져다 댔다. 여기 걔 때문에 다친 거야? 치워. 전은 내 손을 내쳤다. 나를 잠깐 잘근잘근 흘겨보다가 앞장서 걷는다. 나는 멀어져가는 전에 조바심이 났다. 내 이름 최승철이야. 뒤에서 불러봤으나 반응이 없다. 허나 확신하는데 못 들었을 리는 없다.
빈민가 출신 새끼. 일전에 주근깨가 멍든 턱을 부여잡고 소리치던 말이 수업 중에 떠올랐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전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한낮을 소비하고 있을때 전은 무엇을 할까. 검은 셔츠와 캡모자를 눌러쓴 채 우리 집골목을 배회할까. 코카인과 엘에스디, 엑스터시라는 명칭으로 전을 살리는 게 돈이라면 그런 건 내가 줄 수 있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화학 시간에 빠질 상념은 아니란 깨달음에 생각을 접었다.
그런데 우연이 우릴 묶어놓은 것도 아닌데. 나는 전이 나타날 이유가 없던 하굣길에서 그만 전을 마주쳤다. 야, 전원우. 반가워서 손을 흔들자 전이 몸을 돌린다. 전은 가두에 위치한 프렌차이즈 햄버거 가게로 들어갔다. 나도 전을 따라 들어가 재빨리 뒤에서 열린 문을 잡았는데 몰랐는지 바짝 다가온 나를 보고 놀란다. 그날의 전은 모자도, 어두운 외투를 입지 않았다. 민얼굴에 보슬보슬한 니트 차림이었다. 뭐 먹고 싶어. 등 뒤에서 물었더니 비웃는다. 내가 뭘 먹든. 그 말에 오기가 생긴 나는 무료하게 전의 옆에 서서 주문하는 걸 듣다가 말을 끊었다. 전의 말허리를 자르고 손가락으로 다른 버거를 가리켰다. 그거 말고 이거 주세요, 라고. 주문과 동시에 내가 달러를 내밀자 전은 당했다는 얼굴로 변한다. 이게 더 맛있어. 그러자 전은 나를 무시한 채 지나쳐갔다. 그리고는 원래 주어진 자리인듯한 제일 구석 자리에 앉았다. 나도 놓칠세라 의자를 빼고 그 앞에 앉았다. 전이 내 눈을 응시한다.
왜 그래.
뭐가.
나 좀 몇 번 봤다고 네 멋대로 하고 있잖아.
아… 감시. 구면이니까 그래도 되겠다 싶어서.
불만스러워보였으나 티는 내기 싫었는지 전은 대꾸가 없다. 우리는 묵묵히 햄버거를 먹었다. 내가 먼저 포장지를 내려놓고 전을 기다렸다. 다 먹어 갈 때쯤 물었다. 다 먹었어? 전이 고개를 끄덕인다. 뭐야, 말 잘 듣네. 내가 일어나자 전도 따라 일어섰다. 아마 맛있어서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하긴 아까의 주문으로 봤을 때 매번 그 메뉴만 먹었던 거 같은데.
가게를 나와 길을 걸으며 전의 이야기를 들었다. 전은 자신을 잡종이라 했다. 단순히 자신의 출처를 모르겠다는 이유로. 부모도 형제도 돈도 뭣도 없는 전이 가진 유일한 것은 목숨이 다인지라 나는 전의 목숨을 지키고 싶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딱히 대단한 이유는 없다. 단지 전을 보호하고 싶다는 이상한 충동에 사로잡힌 것뿐이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죽을까 싶다가도 죽을 고비를 어떻게 넘길지 매일 기대하며 살아.
전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곱씹어보다가 노트를 덮는다. 하루 끝에 쓸 말이 없다. 결국 침대로 올라가 누워서 천장을 봤다. 창밖으로 달의 그림자가 들어오니 몽롱한 기분이 든다. 사람들의 밤이 수많은 별로 이루어져 있다면 전의 밤은 두 겹이다. 까만 도화지 한 장이 전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별이 다 가려지게끔. 전이 별을 보지 못하는 건……. 나는 뭐라고 전원우를 걱정하고 있나. 전원우 생각이 무겁게 머리를 짓눌러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숨을 내쉴 때마다 얼굴을 감싼 이불 안이 뜨거워서 그 온도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큰일이다. 교회에도, 지하에도. 어디에도 전이 없다. 전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동네에서 사라졌나, 다른 데로 이사를 했나. 말없이 어디로 떠난 것인지 모든 경우의 수를 따졌다. 수업 내내 걔 생각만 했다. 학교가 끝나고는 혹시 다시 만날까 싶어 집에 가려다가 일부러 학교 근처를 돌았다. 빙빙 몇 차례 같은 곳을 여러 바퀴 돌다가 교문에서 벽에 등을 붙이고 기다렸다. 그러다 멀린 선생님을 만났다. 전을 잃어버렸다고 했더니 여기 사는 애가 아니었잖니, 한다. 몰랐다. 전이 어디에 사는지. 애초에 전에게 집이란 게 있는지. 왜 놓쳤을까. 그래서 동네를 살폈다. 모가 난 동네 구석은 철폐된 가게와 조잡한 골목 사이사이 담배를 피우는 행인들이 기거한다. 사층짜리 저택에 사는 내가 차마 몰랐던 암울한 공간. 전은 이곳으로 무슨 감정을 이고 왔을까. 그 무게를 상상하자 그 뒤로 아홉 시를 지키지 않게 되었다. 전이 몇 시에 오는지 알 수가 없어 모든 시간을 투자했다. 그렇게 하루 대부분을 작은 방의 창문을 내다보는 것에 썼다. 전이 언제 올지 안절부절못하며.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창틀을 붙잡고 있었다. 시계바늘이 아홉 시를 가리킨다. 몸을 숙여 땅이 뚫어질듯 지켜보다 시선 끝에 검은 머리가 보인다. 전이다. 전이 왔다. 반가워서 바로 내려가려고 했으나 전이 내게 고개를 저어서 그러지 못했다. 대신 뭐라 말을 한다. 나를 올려다보는 전의 입술이 연달아 심문하는 프레임. 전은 딱 네 글자를 말했다. 떠날 거야.
단숨에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스니커즈를 구겨 신고 대리석 바닥을 가로질렀다. 발바닥이 저릿해 오는 걸 참으며 문을 열고는 문 옆에 기대어 서 있는 전을 껴안았다. 까만 행색인 전을. 더웠는지 전은 온몸이 뜨거웠다. 내가 전의 품을 파고들자 전이 머뭇거리며 나를 떼어놓는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전의 얼굴에 상처가 가득이었다.
어디서 맞고 다니지 마.
난 나한테 좋은 일만 해.
그게 너한테 좋은 일인 거 확신해?
어. 확신해. 그러니까 너도 너 좋은 일만 해.
곧 전의 단호한 어투에 뭉개진다. 그날에 우리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전의 주머니로 살짝 보이는 비닐이 전의 병을 말해준다. 어떤 쇠퇴한 것들이 전을 자꾸 좀먹는지. 전은 왜 그들에게 쉽게 갉아 먹히는지. 걱정에 사로잡힌 내 표정을 응망하던 전은 입꼬리를 올린다.
나랑 같이 떨어져 죽을래?
전이 웃었다. 전이 웃는 건 처음이었는데 나는 웃지 못했다. 내가 그대로 굳어서인지 전이 제법 진지한 어투로 속삭인다.
지금 이 말에 조금이라도 끌렸다면 난 널 다신 안 볼 거야.
미안해. 사과할 필요가 없었는데 사과했다. 순간 전의 제안에 이끌려서. 농담이라 생각했으나 전의 얼굴을 봐서 진심 같았다. 그러자, 라는 말이 목까지 타고 올라왔던 걸 가까스로 삼켰다. 전을 실망시키기 싫어서.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걱정은 아프지 말라는 말이 다였다.
침대 밑에 숨겨놨던 걸 꺼냈다. 한발 써본 적 없는 무장용 소총을 전에게 밀어서 건넸다. 전은 가방에서 꺼낸 달러를 세다가 멈추더니 당황스러움이 묻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야.
보면 몰라?
이걸 왜 나를 주냐고.
너 목숨 지킬 값. 너는 가진 게 없으니까 이런 거라도 갖고 있어야……,
원래 너 같은 놈들은 다 그래?
거기까지 말하다 가까이 다가온 전에 뒷말을 삼켰다. 전이 상기된 어조로 어깨를 잡았다. 떨리는 손에는 힘이 들어간다.
상류층 새끼들. 친절한 척 온갖 내숭 다 떨고 고상한 척하느라 바쁜 새끼들. 그런 놈들은 왜 가난해서 몹쓸 짓이나 하는 놈 못살게 굴지 못해 안달이야. 존나 만만하지, 내 인생. 이렇게 더럽게 살아서 뭐하나 싶지. 왜 사느냐 싶지. 차라리 죽으면 행복할 텐데 어떻게 잘도 버티나 싶지. 그래서 어떡할까. 내가 어떻게 해줘? 살고 싶어서 사는 사람은 없어. 나 같은 새끼들은 죽을 용기가 없어서 살아. 그러는데, 넌 아니잖아. 너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전의 마지막 말에 반사적으로 기염을 토한다. 이제야 한 걸음씩 널 알아가고 있는데. 너를 더 알고 싶어서 뭐든 하고 싶은데. 한 겹의 도움이라도 너를 더 보호할 수 있다면 그게 내 염원이고 간절함인데. 모르는 건 내가 아니다. 전원우다. 전원우가 나를 너무 모른다.
그러는 너는. 내가 너를 하루에도 몇 번 생각하는지 알아? 아무것도 모르는 건 너야. 왜 내가 너한테 이러는지…….
전은 순식간에 작아졌다. 그건 발악이었다. 나를 알아 달라는. 내 말에 전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그냥 가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또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나도 한동안 창문을 내다보지 않았고. 그래서 전이 왔다 갔는지 어렴풋이 알지도 못했다. 전은 이 동네에서 소멸한 듯했다.
그리고 전을 다시 만난 건 학교를 나서던 길가에서였다. 전은 여름이 사라져갈 때쯤 거짓말처럼 나타난 불온한 결정이다. 내 이름을 데미안으로 바꿔놓는 상상을 했어. 내가 전원우가 아니면 어떨까…… 생각하니까 짜릿하더라.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전이 손을 내민다. 기다렸어. 말하는 전은 약간 울상이라서 나는 대답 대신 손을 잡았다. 내가 할 말인데 그건. 전이 입술을 물어뜯었다. 맞잡은 손이 식은땀에 젖어 눅눅하다. 보여줄 게 있어. 전이 셔츠에 손을 닦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낸다.
위조했어?
아니.
전은 보여준 건 카드였다. 우리 학교 마크가 박혀있는 카드는 내 것이랑 똑같았다. 네 것도 있어? 먹먹해지는 순간에 전이 묻는다. 나는 얼떨결에 목에 걸고 있던 내 카드를 보여줬다. 최승철. 너는 전원우. 알파벳으로 조합된 이름이 낯설다. 형이네. 전이 내걸 살피더니 서로 다른 색을 보고 웃었다. 형인지도 모르고 여태 막대했네. 학생이라는 타이틀은 전에게 쓰여진 새로운 기호다. 보고 싶었어. 나랑 어디든 갈래? 전이 웃는다. 전이 웃는 모습은 두 번째였다.
우리는 캐딜락에 몸을 실었다. 나는 피처럼 붉은 전의 하와이안 셔츠에 몸을 맞췄다. 차 시트에서 하는 키스는 짜릿했고 우리는 유달리 느렸다. 전은 시간을 세는 것처럼 느긋한 키스를 퍼붓는다.
하루종일 키스만 할래. 하루종일 손을 잡고.
로맨틱하게 굴지 마. 안 어울려.
지금은 이거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삽시간에 전의 얼굴 근육이 굳어감에 약하다. 나는 전의 목에 두 팔을 두르고 입을 살짝 벌렸다. 전이 눈에 나를 담는다. 고개를 꺾으며 내 입술을 핥는 전은 어린아이마냥 어려진다……. 어디 갔었어. 내가 안 필요해? 묻는 말은 반칙이다. 너야말로 네가 먼저 사라지잖아. 대꾸하는 나는 유약하고 전은 소려하다. 나는 전해지는 숨 사이로 말을 전했다. 하루에도 네 생각을 몇 번이고 한다는 얘기. 전이 또 웃었다. 전이 웃는 건 볼 때마다 새로웠다.
차 위에서 보는 노을은 꽤 감성적이다. 어울리지도 않지. 덥다고 보닛 위에 누워서 맞는 여름의 마지막은 피서도 아니고 도피도 아니었다. 전은 눈을 감는다. 형을 사랑해요. 막 짜인 대본을 읽듯이 내뱉는 말이 심장 부근을 자극해 몸에 전류가 인다. 진정이 안 된다. 낭만 없는 도시에서 낭만을 만들려는 건 전원우 뿐일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런 말 하면 전원우 아닌 거 같아요? 전이 내 쪽을 본다. 노란색 빛이 얼굴에 물들은 전원우. 스며들고 싶다. 이런 날은 네가 너무 좋아서 그게 문제일까 싶다. 협박이라 생각하면 협박으로 듣고, 고백이라 생각 들면 고백으로 알아줘. 내가 살아갈 자리 없는 이 도시에서 내 집을 찾아 준 사람이 형이라서. 하필, 하필이면… 짜증 나게 그게 너라서. 전의 깜빡 꺼리는 눈은 영롱했다.
그래서 난 형이 필요한가 봐. 형이 알려준 거예요. 내가 있을 곳이 형 옆이라는 거를.
그럼 우리 사랑에 빠지자. 그래야겠다 싶어 전을 봤다. 나랑만 있을래 원우야? 간질거리게 속삭이자 전도 나를 봤다. 아니, 안돼. 형은 나랑 있으면 소모돼. 매일 밤 죽고 다음 날 지겹도록 살아나서 상처는 못 아물고 아프기만 할걸. 죽는 것도 완전히 다 못 죽고 반만 죽어서 고통스럽기만 할 텐데. 상관없어. 전의 아집을 막기 위해 내뱉은 말이 위로 뿌려진다. 넘실거리는 바람 소리만이 귓가를 자극하고 한참 사색하던 전이 입을 연다. 그래도 좋아요? 그래도……, 나랑 같이 있고 싶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나도 형이랑 있고 싶어. 그러니까 나를 구해줘, 사랑하니까.
내가 형을
사랑해요
사랑해
전의 확증은 불에 번져 커지는 형체.
그런 나는
전원우를
사랑하나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전원우가 손을 뻗는다. 내 볼을 만지다 손을 잡아 왔다. 앞으로 착하게 굴게. 응? 우리의 손가락이 덩굴처럼 얽힌다. 그럴 필요 없어. 나한테는 나빠도 돼 넌. 대답하자 전원우가 어깨를 감아왔다. 가까이 와요. 전원우의 심장이 달음박질하는 게 느껴진다. 우리는 멀리 있어도 가까울 거야. 전원우는 손을 더 꽉 잡고 고개를 꺾는다. 입술이 닿아서 따뜻했다. 완벽한 공간. 서로의 이음새가 된 손가락은 연緣과 같아 우리는 영원토록 울지 않을 것이다.
단지 나는…….
전원우의 목숨이 세상에 하나뿐이라는 것에 분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