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 what I have done
카테고리
작성일
2021. 1. 9. 08:47
작성자
hhh..

 

바닷속으로 향했다. 줄줄 흘러나오는 소금기가 녹아지는 바닷물은 여름이라 후더운 줄 알았다. 하도 일렁거리며 반짝거리니까. 물속에 햇빛이 파편처럼 녹아 열을 내고 있어서 가뿐히 화상을 입을만해 보이는 해수면에 나는 데었으면 했다. 급한 마음으로 끈덕진 목덜미 위로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고 준비 없이 다리 한쪽을 앞세워 물에 들어간다. 숨은 화들짝 놀라 가빠진다. 차갑다. 밟히는 물이 발목을 치고 올라오면 얼음 위에 올라선 것과 같다. 진정 안 되는 폐호흡을 다스리느라 몇 초 남짓을 낭비한다. 뭐든 허투루 소모되는 게 싫어. 눈을 꼭 감는다. 걸어 들어가 마침내 허리 너머까지 완전히 물이 찼을 때, 잠수한다. 물살이 온몸을 감싸고 도는 이치. 시간은 삶의 단위이고 삶의 단위가 별처럼 쏟아지는 이 지금. 내 몸은 바다와 하나 되기를……. 된다면. 바닷물에 나 또한 녹아 흘러 소금처럼 햇빛에 응어리지기를. 그런다면, 그런다면. 난 그러기가 간절했다. 일순간 숨을 내뱉을 수 없이 숨이 찼다. 바닷물도 차고.

죽는다면 뜨거운 바닷물에서 녹아 없어지는 것이 본디 꿈이었으나 늘 실패하고야 만다. 나는 살짝 발을 떼고 고개를 든다. 사선처럼 기울어 기대 누우면 얼굴에 침범하는 물결. 햇살이 채 첨부되지 않은 물은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가고. 결국 오래 안 있고 일어선다. 짓누르는 물의 무게가 사라지고 부력에 의해 제멋대로 움직이는 팔 다리 또한 원래대로 돌아오니 옷에서는 파란 바닷물이 투명하게 떨어진다. 머리에서 흐르는 땀도 더운 열에 의해 같이 아래로 떨어진다. 나는 그대로 노을이 지는 해변을 걸어 나왔다.

 

 

여름 노을은 너와 내가 사랑할 메타포라고 이지훈이 그랬다. 그 얘기는 동그란 은테 안경을 쓴 처음 만난 이지훈이 해줘서 듣게 된 어느 주인공의 삶의 기록에서 비롯된다. 처음 만난 이지훈은 전학 온 날 하필 나의 빈 옆자리를 차지했다. 이지훈은 수업 시간에도 다홍색 커버의 양장 소설책을 끼고 있었다. 그 책을 책상에서 내리는 법이 없었다. 뭘 그렇게 열심인가 싶어 곁눈질로 보려니까, 이거 읽을래? 무표정한 얼굴로 권유했다. 이지훈 손가락에 낀 종잇장은 걔의 손가락을 더 부각했다. 뽀얬다. 손가락뿐만 아니라 손 전체가. 해끄무레하기보다도 뽀얬다. 분홍색 손톱이 눈에 띄는 이지훈 손이 내 팔꿈치를 민다. 나는 움찔거리면서 깨어났다. 읽을 거냐고. 이지훈은 내 눈을 보며 물었고 나는 이지훈 손끝에 시선이 가닿아 있었다. 고개를 저었다. 책상 위로 교차한 팔 위에 턱을 묻고 눈을 감으려는데 이지훈이 어느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 일을 끝마친 소설 속 주인공은 바다로 간다.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서, 언젠가 녹아 사라지기 전에 이 바다를 다 담아야지. 이상한 생각을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같은 짓을 반복한다. 그러나 한가지, 그는 여름에만 그렇게 한다. 여름에만 바다를 찾아와 물속에 누웠다. 이지훈은 그가 바닷물이 뜨거워지기를 원해서 그러는 거라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차가운 바다보다 뜨거운 바닷속에 있으면 온전히 녹아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잖아. 나는 눈을 끔뻑였다. 그래서 여름을 찾는 거야. 여름 노을 아래서 녹아 없어지기위해. 이지훈이 덧붙였다. 그는 한동안 바닷속에 있다가 자리를 뜬다. 그의 가벼운 발걸음은 유쾌하게. 춤을 추며 돌아간다. 몸에서 물이 떨어지는 채, 그가 울며 집에 가는 것으로 소설이 마무리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좋은 거 같아.

뭐가.

그냥 이 책이. 

그런가? 나는 이지훈의 기호에 물음표를 달았다. 이지훈이 좋다고 하는 것들은 주로 노래나 책 아니면 악기라서 걔의 감성은 나랑 다른 차원에 있는 듯했다. 우주 저 먼 끝 어느 작은 행성마을에. 공을 차며 놀다 들어와서 이지훈 옆에 앉으면 나는 가라앉는다. 뻘뻘 흘리던 땀도, 거세지는 숨소리도 이지훈 옆이면 차분해지고 사라진다. 책을 좋아하는 이지훈과 이지훈이 들려주는 얘기를 거부하지 않고 듣는 나. 우리는 항상 그런 형태로 조각돼갔다.

짧은 인사로 시작해 이따금 맞춰본 취미는 우리 둘의 교집합을 만들어냈다. 이지훈은 그 교집합을 알게 모르게 내게 상기시키곤 했다. 이지훈이 가족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은 얼추 나랑 비슷했다. 야, 나는 막장이 더 좋은데. 잔잔한 서사를 보다 보면 질리기 마련이다. 이지훈은 내가 들고 있는 포카칩에 손을 넣어 한 움큼 집어먹으면서 노려봤다. 막장보다는 야, 힐링을 해야지. 드라마에 힐링이 없으면 어디서 힐링을 찾아.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라 응당 고갤 끄덕인다. 그러면 이지훈은 잠깐 내 허릴 감싸오거나 스치듯 팔을 쓸었다. 나는 그 촉감 앞에서 순한 여우처럼 금세 꼬릴 내렸다. 닿아오는 걔 손길에 뭣도 못 하고 그냥. 당한다. 그래서 발생하는 괜한 오기로 나는 이지훈에게 더 심한 스킨십을 걸었다. 이지훈은 아까 한 자기 행동은 벌써 까먹어버렸는지 왜 만지냐고 성질을 낸다. 손을 쳐냈다. 그러면 나는 또 뭣도 못 하고 그냥 당한 채로 있다. 이지훈은 대체 왜 그렇게 했던 걸까. 이지훈. 이지훈은.

 

이지훈과 짝으로 지내는 건 유치했지만 재밌었고 서럽지 않았다.

 

이지훈은 우리 사이에 선을 그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의 선이다. 직선. 치사하게 자긴 자주 넘어와 놓고선 매직펜으로 직선 하날 긋고 나는 넘어오지 말란다. 하지만 나는 선이 그어지면 넘어가고 싶어지는 편이라서 지키지 못했다. 어릴 때 키를 재던 낙서 벽이 그랬고, 중학생 때 열심이었던 테니스 필드에서도 그랬고. 나는 온갖 불편한 자세로 이지훈의 직선을 넘나들었다. 그러니 이지훈은 나중에 가서 그걸 지우개로 박박 지웠다. 가다가 군데군데 끊긴 선이 흐릿하게 우리 책상에 남게 된 이유. 물론 직선은 내 책상에 있었다. 이 정도. 넘어오지 마. 내 쪽에 가까운 오른편에 선을 그어놓고 넘어오지 말라는 건 부당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넓은 이지훈의 영역을 자주 침범했다. 이지훈은 넘어오지 말라고 나를 밀어냈으나… 종종 나한테 뭘 물어보곤 했다. 그러니까 내가 걔 쪽으로 넘어가도 당연히 말할 것이 없어져 버렸다. 자기가 편하자고 하는 건지, 그럴 땐 넘어와도 괜찮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이지훈은 자꾸만 내게 끝없이 모르는 걸 물었다.

학기가 끝나가는 무렵엔 여름이 문을 두드렸고 우리는 파릇한 녹음에 묻혀 하루를 살았다. 이지훈이 도서관에 살다시피 드나 들을 때 나는 운동장 모래 위에 누워 햇볕을 쬈다. 땀이 뚝뚝 떨어지는 이마를 가리면 구름이 사라진다. 타들어 가는 팔다리를 애써 이끌어 일어났다. 마주 본 학교 건물에 교실 창문으로 이지훈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필, 바람이 불어서 이지훈 앞머리가 흩날리고…. 나는 물었다. 종쳤어? 이지훈은 턱을 괸 채 답한다. 아니. 닿는 시선은 꽤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눈을 봤고 이지훈은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곧? 나는 그 말에 교실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이지훈이 불렀다. 누구? 나를. 나를 불렀다. 나를 부른 이지훈이, 권순영, 이따가 나랑 같이 가! 소리친다. 나는 그 한마디 때문에 뒷걸음질 치려다가 못하고. 세찬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상체의 삼 분의 이를 밖으로 내밀면서 양손으로 창문틀을 잡고 갈구하는 이지훈에게 알겠다고 했다. 오케이 표시를 엄지와 검지로 만들어 웃었다. 이지훈은 따라 웃었다. 나, 갈 데 있거든? 거기 너도 같이 가! 이지훈의 붉은 입술이 떨어졌다 오므라진다. 얘는…. 얼굴이 하얗고 조막만 해 곧 사라질 것 같이 군다. 이지훈의 머리 위에 해가 있었기 때문일까?

 

 

우리는 이지훈이 읽어준 책 안으로 들어간 듯했다. 우연히도 지금 나는 이지훈과 바다 앞에 서 있다. 이지훈이 왜 나를 여기로 데리고 왔는지 모르겠는데 문제는 그것보다 더 큰 문제. 여기는 잘 모르니까 나보고 잘 설명해보라고 하는 이지훈이다.

또?

이지훈은 모르는 게 많았다. 내가? 그래 네가. 여기 너 말고 누가 더 있어. 팔을 당기며 준비 운동을 하는 이지훈. 물속에 들어갈 거라는 신호였다. 나는 와이셔츠 깃을 조이는 넥타이를 풀면서, 너도 모르는 곳에 날 왜 데리고 와? 하고, 정말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그런데 이지훈은 외려 딴말을 한다. 여기서 우리 집 방향이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해?

멍청이.

순화해서 말한 거다.

지는.

이지훈은 순화하지 않았다. 벌써 준비를 마친 이지훈은 파도 앞에 섰다. 물결이 이지훈 발까지 와서 발등을 적시고 되돌아갔다. 나는 이지훈 옆에 서서 똑같이 발을 물에 내밀었다.

바닷물이 뜨거워지기를 기다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응.

대답했더니 이지훈의 잇새로 바람이 빠져나왔다.

너 왜 내 말 다 믿어?

그러는 너도 내 말 잘 듣잖아.

그러네.

이지훈은 망설이지 않았다. 교복 바지를 걷어 바다로 뛰어 들어갔다. 파도 속에 팔을 담가 물을 가득 받아 뒤따라오는 내게로 던졌다. 야, 차가워! 투명한 물이 유리 조각처럼 깨져 사방으로 튄다. 이지훈은 맑게 웃으며 물을 뿌려댔다. 멈추지 않았다. 걔 눈이 반달로 접힌다. 그런 얼굴은 나랑 닮았다. 웃기다. 귀엽고 또 사랑스럽고. 단숨에 물에 다 젖은 생쥐 꼴이 된 우리는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추운 몸을 덜덜 떨며 나란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 우리는 매일같이 붙어 다녔다. 이지훈과 나는 겉으론 잘 맞지 않는 N극과 S극. 그렇지만 걔도 자석. 나도 자석이다. 이 뜻이 뭐냐면, 사실 우리는 같다는 것. 이지훈이 N극만 주구장창 하겠다면 내가 S극을 포기하지 뭐. 그래도 좋을 것 같아서. 우린 붙지 않는 극인데 나는 왜 이지훈과 붙고 싶어지는걸까. 이지훈과 계속 지내다 보니 나는 어느새 걔가 없으면 불안감을 느꼈다. 집이 가까우니까 하굣길에도 같이 가야하고. 어쩌다 걔가 우산을 안 갖고 오면 내 우산을 씌워야 했다. 나는 자주 이지훈을 우리 집에 데리고 갔는데, 가족들은 이지훈을 맨날 봐도 맨날 반겨주었고 이지훈은 날마다 다른 화제를 날마다 새로이 얘기해주었다. 나의 흥미를 돋운다. 내가 모르는 세계 속에서 선두자인 이지훈은 게임을 잘하고 악기를 잘 다루고 나보다 책을 많이 읽었고 여름에 지지 않았고 바다를 사랑했고 과학을 따랐고 우주를 꿈꿨고 노을을 추앙했다.

 

 

걔 말에 의하면. 노을이 예뻐서 우리가 사랑해야 한다고 그랬다. 나는 처음에 잘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가 저 노을을, 아니면 우리가 사랑을? 노을이 예쁘니까 우리가 사랑을 해야 한다는 말이야? 노을 아래의 사랑. 내가 나의 중축되지 않는 낱말과 문장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머릴 굴리고 있는 중에 이지훈이 나를 부른다. 겹치는 파도 소리가 컸음에도 걔 목소리는 또렷이 들렸다. 

야, 권순영. 

어.

야.

어, 그래 뭐.

우리는 계속, 계속. 책 속의 주인공처럼 바다 안에 들어가 물이 뜨거워지기를. 몸이 녹아내리기를 고대하기를 여름 내내.

연한 바람이 카라 깃을 스친다. 앞머리가 한쪽으로 치우쳐만 가고 이지훈은 내게 바투 붙어왔다. 우리는 곧 코가 맞닿을 거리만큼이나 가까워진다. 끌어모은 내 두 다리를 양팔로 가둔 이지훈이 한참 뜸을 들이다 내뱉었다.

내가 남자 좋아하면 어떨 것 같아.

아웃된다. 나는, 나는 아웃되고 파도치는 소리만이 페이드인 되어서 귓가에 남았다. 이지훈의 무던한 목소리와 함께. 나는 애써 머뭇거린다. 이지훈의 표정이. 얼굴이. 상기된 두 뺨이, 진득하게 노을이 묻은 머리카락이. 속눈썹이. 와이셔츠를 딱 맞춘 어깨가. 나한테 답을 바라는 눈동자 안에 내가 있어서 나는 어디에도 시선을 두기 어려웠다. 내 맘도 모르고 파도는 자꾸 답을 바라고. 이지훈은 자꾸 나를, 권순영. 야, 권순영. 바다가 부른다.

어떨 것 같냐고.

메마른 목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이지훈의 느닷없는 고백에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어… 그러니까. 왜인지 그 당시의 계절은 시원한지도 더운지도 습한지도 몰랐다. 그저 늘 그대로인 나는 이지훈의 물음에 답을 할 뿐.

네가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고.

그럼 너는.

어?

내가 좋아하는 게 너라면.

이지훈은 질문을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넌 어떨 것 같아? 나는 이지훈의 사랑이 입술 밖으로 삐져나왔음을 직감했다. 이지훈은 봤을 것이다. 커진 나의 눈. 말라 갈라진 입술. 깜빡거리는 속눈썹과 떨리는 손가락을 응망한다. 서러웠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리며 물 밖을 나온 물고기처럼 숨을 쉰다.

널 좋아하면 뭐 해. 난 여름 한 철의 반만 살다 갈 건데.

이지훈이 내게서 떨어져, 몸을 둥글게 말아 다리를 끌어안고 무릎에 고갤 올렸다. 그리고 내 쪽을 본다. 나는 그 말도 서러웠다. 이지훈은 이렇게 쉽게 나를 서럽게 만든다. 내가 왜냐고 물을 새도 없이 이지훈은.

전학 가.

선수를 친다.

방학하면.

나는 고갤 내렸다. 나란히 앉아있는 모랫바닥은 쉼 없이 반짝거렸다. 여기에 별이 떨어졌나. 내가 꼼지락거리며 다른 말을 하자 이지훈이, 할 말 없어? 물었다. 나는 꾹 닫은 입을 간신히 열어 중얼거렸다.

갑자기 왔다가 갑자기 가는 게 어디 있냐….

이지훈은 몸을 풀어 팔을 뒤로 쭉 뻗었다. 찡그린 얼굴을 풀고 뒤로 기댄 채 나를 보고 살포시 웃었다.

지구상엔 많아.

이지훈은 그동안 전학가고 전학가고 반복해서 전학만 다녔기 때문에 친구가 있다가도 없다고 했다. 이지훈에게 친구란 짧게 생겼다가 바로 떨어져 나가버리는 것. 판박이 스티커처럼 말이야, 물로 씻어내면 사라지는거더라고. 모래 속에 손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런데 그중에서.

그 순간 왜인지 모든 게 느려졌다. 이지훈 얼굴을 보고 있자니 뒤쪽 풍경과 소리와 넘실거리는 사랑이 한 꺼풀 느리게 돌아갔다. 마치 영상을 느리게 돌리는 것처럼. 하지만 이지훈만은 그대로였다. 그대로 내 눈을 보고 다시 말문을 연다.

네가 내 숨구멍 같아, 알아?

진지한 이지훈. 짜증 났다. 누가 그렇게 말하래. 얘는 아무때나, 아무 장소에서 고백하는 게 버릇인가? 바다 앞에만 있으면 낭만을 찾아서 이렇게 되나. 무슨 열매라도 먹었나. 고찰하지만 열매는 내가 먹었나보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여간 보통 사건이 아니다. 발개졌을까, 내 볼. 보일까. 이지훈한테도 내 부끄러움이 보일까. 느껴질까. 머릿속으로 쉼 없이 되풀이되는 고민이 끝없이 생산되었지만, 그래도 서러운 건 여전했다. 갑자기 전학이 무슨 말이냐고. 왜 좋은 고백과 싫은 고백을 같이 하느냐고.

내가 숨구멍이면 오래도록 나랑 붙어있지.

그러지, 왜 가는데……. 물기를 머금은 음성이 이지훈에게 닿는다. 나랑 있자. 나는 더 말했다. 더 이지훈을 얽매이게 하고 싶었다. 네 덕분에 바다에게 말을 걸어. 네 덕분에 내가 살아있단 걸 알아. 너 덕분에. 다 이지훈 덕분인데. 얼굴에 짠맛이 감돌았다. 모든 움직이던 것들이 형태를 잃고 연해졌다. 바닷냄새도. 규칙적으로 우는 새들도 모두 모습을 감추고 그 장면에서는 우리가 주인공이었다. 내가 코를 훌쩍거리자, 이지훈이 다가와 내 얼굴을 감싸 쥐려는 듯 손을 뻗었다. 나는 내 뺨을 이지훈 손에 댔다. 네 볼 좀 만져보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는 이지훈은 두 눈을 빛내고 있었다. 만져보면 안 되냐. 이지훈이 묻는다. 아니…. 돼. 그러면서 나는. 서운해한 이지훈한테 나는 충동적인 여름 한 철처럼. 야, 네 눈동자 지금 엄청 예뻐. 말해버리는 것이다. 이지훈이 내 목덜미를 끌어당긴다. 나는 속절없이 이지훈 품으로 넘어간다. 모래사장을 짚은 이지훈 손 위로 내 손이 겹쳐지고 나는 반동으로 이지훈의 넥타이를 반대쪽 손으로 잡아끌었다. 이지훈은 내 턱을 양손으로 잡아 진득하게 입술을 부딪쳐왔고 입을 벌려 입 안쪽을 혀로 쓸었다. 말랑한 것이 훑고 지나가자 자국이 남는다. 바다 안 들어가도 되겠다. 이지훈이 읊조린다. 뜨거운 빛 아래 우리는 서로의 땀과 물기를 흡수하며 마음을 나눈다. 나는 이지훈의 심장 박동을 따라,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을 따라 호흡했다. 일종의 증명이었다. 나도 너를 따라 숨을 쉰다는. 그러니 너도 내 숨이 되어 주는 거라고.

노을이 완전히 지기 시작했다. 구름은 티 없이 맑았다. 가만히 있던 나에게 이지훈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옛날에 쓰던 소형 MP3 플레이어였다. 요즘 이걸 누가 써. 건네준 플레이어의 앞면과 뒷면을 번갈아 보며 말했더니, 내가 써. 이지훈이 반박했다. 그리고 이제 너도 써. 나는 주머니에서 이어폰 줄을 꺼내 귀에 꽂았다. 이지훈이 손을 내밀어서 한쪽을 달라고 했다. 나는 반대쪽을 이지훈 귀에 넣었다. 고요한 풍경 속에서 팝송이 흘러나온다. 이지훈은 맨발을 모래 속에 파묻었다. 그리고 나를 보고 또 아름다운 말을 꺼냈다. 영원할 거야. 너도, 나도. 이곳도. 그 말이 그땐 왜 그렇게 고백스러웠을까.

야, 바다에 들어가면 파도가 감싸주는 것처럼….

네가 바다에 들어가면. 그러고선 뒷말을 잇지 않았다. 이지훈은 그렇게 그냥 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내가 대신 말했다. 나는 어떤 수식이 다음에 따라오는지, 그 마침표 뒤를 이을 말이 무엇인지 잘 알았으니까.

응. 네가 없다 해도 나는 매 순간 너와 함께 바다에 있어, 지훈아.

이지훈은 미소지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리고 갑작스레 뒤로 넘어간다. 나도 따라 누웠다. 불그스름했던 노을은 어느덧 새빨갛게 바다 위를 칠하고 있었다. 선선한 여름 바람이 우리의 몸을 감싸고 돌 때. 나는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너한테 손이 잡혔다. 이지훈의 손은 뽀얗고 희끄무레한데다가…… 부드러웠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기억. 마지막 추억. 나는 여름이 되면 네 생각을 해, 바다로 나온다. 네가 읽어준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몸을 녹인다. 녹이고 있으면 내 몸에서는 너의 사랑이 나와 물속으로 가라앉는 침전물이 되고, 내 마음을 해수면 위로 둥둥 띄운다. 나는 눈을 감고 바람을 맞으며 몸이 점점 사라지는 걸 느낀다. 이지훈이 내게 준 mp3는 여전히 내 가방 안에 있다.

네가 말했지. 여름 노을은 우리가 사랑할.

우리는 사랑, 했다. 무엇을. 여름을. 여름의 노을과 우리 서로의 어깨에 기대 밤낮으로 꿈을 꾸던 그곳에서의 여름을. 나에게 바다는 이지훈이었다. 바닷가 노을을 보자며 나를 찾는 이지훈한테는 내가 노을이었고. 하루도 빠짐없이 바다는 노을과 맞닿는다. 이지훈은 좋아했다. 샛노란 노을과 빨갛게 물든 바다를.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맞닿는 일……. 그것은 그 계절에만 유일해서 나는 아직도 그곳에 얽매인 채 노을 해가 저물던 그때의 우릴 사랑해마지않는다.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