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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 1. 9. 11:48
작성자
hhh..

원홋윤 리버시블

 

<all about space>는 몇 달 전 두어 번의 앨범을 냈지만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묻혔다. 신규 인디밴드의 정체성이란 그런 거지. 독창성 독특함 이런 거 다 기성 그룹이 우리인 척하고 뺏어가서 그래. 우린 킥드럼을 찢어도 나이롱 여섯 줄 피크질로 손톱 피 철철 뜯겨 나가도 직캠 하나 안 뜰걸. 보컬이 거든다. 스네어를 깨부숴도! 마이크로 스네어를 강타하자 챙, 하는 소린 합주실을 울린다. 그렇지, 맞아. 고개를 끄덕인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배고픔에 허덕였다. 꿈은 허상이다. 윤정한은 리더라는 덕목을 지닌 이상 팀을 살려야 하는 강박에 시달려 늘 손에 뭔가를 쥐고 있었는데, 그 주 업무가 SNS에서 팀 계정의 반응을 살피는 일이다. 그러나 1페이지 이상 떨어지지 않는 스크롤 바에 곧장 얼굴은 찌그러들고. 형. 이대로 사는 게 맞아요. 진짜? 구석에서 드럼이 묻는다. 막내다. 열여덟에 들어간 한예종 자퇴하고 어떡하면 드럼을 본새 나게 잘 치는가에만 매진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말랐단 뜻이다. 불성실이라면 치를 떠는 애인데. 인생의 가장 큰 일탈이 자퇴였을 애를 두고 이대로 괜찮은가? 멤버들이 저마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아야, 자퇴는 일탈도 아냐.

 

졸라 내 청춘이 아깝다! 드럼은 스틱도 내버려 두고 합주실 바닥에 누워버렸다. 그 한탄에 재깍 반응하는 권순영. 야. 청춘을 살고 있으면서 청춘이 아깝다는 말을 해. 비아냥한다. 일렉 기타를 조율하던 권순영과 눈이 마주친 윤정한은 어드벤처 게임에 떨어진 NPC처럼 퀘스트를 하나 내걸었다. 작전명 우리 밴드 살리기. 하지만 스케줄은 몇 주째 비어있는 상태고 지친 멤버들은 시시콜콜 한오라기의 재미라도 찾을까 싶어 밖을 떠돈다. 그래도 윤정한과 권순영은 작업실에만 박혀있었다. 밴드는 이 둘의 손에서 탄생한 거나 마찬가지여서 책임감이 컸다. 아무래도. 둘을 포함해 실장님까지 셋. 홍보를 돌리고 오면 피곤함에 절은 몸으로 실장은 겉으론 괜찮은 척했으나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짜증을 온전히 숨기진 않았다. 은근히 표출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윤정한 본인 빼고 전부였다. 힘든 건 저희도 마찬가지거든요? 대꾸가 입 밖까지 나왔으나 입을 열진 못하고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권순영은 아니었다. 누나. 이번 앨범 그렇게 가면 망할 것 같아요. 필기하던 윤정한 손이 멈춘다. 컨셉 회의에서 권순영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안 든다고. 솔직하게 나불댔다. 사실 권순영은 오래전부터 이를 갈았다. 그 고고한 프라이드로 유일하게 소속사 대표와 실장님 사이에 서서도 지지 않는 게 권순영이었다. 이번에 안 되면 진짜 좆망해. 결국 권순영 말 따라서 올어바웃스페이스는 아예 체제를 바꾸기로 한다. 일렉 기타만 쳤던 권순영이 전곡 작사 작곡. 본인 사운드 클라우드에 몇 개 있는 샘플을 손봐 얼추 살렸다. 원래 곡을 주던 작곡가 형하고 원만하게 합의 봐서 버릴 거는 버리려다가 다 버리게 됐다. 우리 색깔이 필요한 거 같아. 근데 형이랑 계속하기엔 좀 그래서. 우린 밴드잖아. 곡을 왜 형이 검수하는 거야. 며칠 후 권순영의 검지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에 연기가 피어오를 때. 작곡가 형은 헛웃음을 쳤다. 하지만 몇 차례의 실랑이 끝에 나가떨어진 건 권순영이 아닌 그 형이었다. 작곡가 형은 소속사를 상대로 계약종료를 앞당겼다. 그러면서 권순영에게 말했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똑똑히 봐둬. 이 판 좁아. 물론 권순영은 아무렇지 않았다. 웃기밖에 더 했나. 형. 그런 건 진짜 갑들이나 하는 말이야, 하고.

 

요즘은 신곡 준비가 한창이다. 나날이 바쁘고 피곤했다. 근데 우리 이거 무슨 컨셉이냐? 우주 컨셉. 심오하네. 앨범아트도 그래픽노블 느낌으로 할 거야. 권순영의 설명에 보컬이 웃었다. 그건 네가 히어로물 좋아해서 그런 거 아냐? 스탠딩 마이크를 고정하는 보컬의 뒤로, 권순영이 어깨를 으쓱한다. 베이시스트 윤정한은 권순영이 곡을 쓰면서 피드백을 요청하기 전까지 딱히 할 게 없어 자기 몫의 5현 베이스를 시시때때로 쳤는데 가끔은 권순영의 요청에 따라 코러스를 녹음하기도 했다. 형이 목소리가 좋거든. 눈꼬리를 올리며 웃는 권순영의 모습에 감긴 적 다수. 그래서 내 보컬을 따는 건가? 진짜 보컬이자 프런트맨인 쟤가 저기 소파에 앉아있는데. 형 거기 한 번만 더 부르자. 어어, 알겠어. 윤정한은 녹음 부스 맞은편에 뚫어지게 자길 보는 눈을 자꾸 마주쳤다. 어쩔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저 분홍빛 입술에 키스해주고 싶은 맘이 일렁여서. 윤정한이 응당 지켜본 결과 권순영은 단순했다. 복잡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권순영의 일상 루트는 비슷비슷하다. 어느 날은 연필을 물며 가사지를 고치고. 어느 날은 소파에서 잠만 잤다. 또 어느 날은 애인들을 모조품 골라내듯 갈아치웠다.

 

 

 

 

권순영은 의지박약을 혐오한다. 남에게 의지하느니 혀 깨물고 나자빠지는 게 낫다는 판단으로 남자친구를 사귈 때도 결말에 적용하는 권순영은 헤어지잔 말에 강한 독종이다. 그래. 헤어져. 네가 싫다는데 내가 뭐 어쩌겠냐. 웃으면서 대거리하면 되레 걔 남친들이 울었댄다. 윤정한은 하등 이해되지 않았다. 통보는 지들이 통보했으면서 당한 척 어쩔 수 없이 떠나가는 척 피해자인 척 생쇼를. 왜 해? 나처럼 가만히 있어야지. 윤정한은 권순영 전남친들과 자기는 다르다고 여겼다. 아무튼 간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걔네 꼴을 보던 권순영은 이별 현장 크라임존에선 무덤덤했고 늘 끝나고서야 화를 냈다. 그러다 보니 모멸감이 쌓이고 쌓여서 종내에는 윤정한을 부르는 것이 버릇이었다. 내가 마음의 안식처? 그런 건가. 권순영 입장에선 별것도 아니지만 충분히 오해하고 싶었다. 형. 나 헤어졌어. (윤정한은 이 대목에서 한숨을 존나 쉰다) 그랬어? (속으론 좋았다) / 어. 그 새끼 전부터 속이 보인다 했더니 헤어지자 할 거 같았어. 개짜증나네. / 그게 다야? ……슬프진 않아? / 내가 왜? 왜 슬퍼? / 헤어졌다며. / 어우… 슬퍼해야 되는 거야? / 권순영은 이해 자체를 못 했다. 겉보기에 어쩌면 안 하는 것 같았다. 감정 결여는 아니다. 뜬금없는 상황에 파이팅 넘친다거나 로맨스 드라마 주인공에 몰입하는 걸 보면.

 

그래서 뭐 하는데. 나 지금 술 마셔. 어디서. 형이랑 항상 만나는 곳 있잖아.

 

안 슬프기는 개뿔. 내가 슬퍼. 권순영이 헤어지면 늘 가는 술집으로 전화를 끊자마자 달려갔다. 헤어지고서 매번 윤정한을 찾았기에 달려가서 달래줘야 했는데. 물론 권순영은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가 부르지 않았어. 그냥 헤어졌다고만 했지. 근데 왜. 왜 형이 나한테 오지? 이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남한테 의지하는 게 뒤지는 것보다 싫으니까 안 하고 있을 거라 자신을 꽤나 잘 믿어서. 하지만 윤정한이 그딴소리를 귀에 딱지 앉을 만큼 사는 이상, 항상 이런 리플레이였다.

 

얼마 뒤의 컴백은 소위 그들 기준 대박이 났다. 방구석 지하 인디 밴드한테도 기회라는 게 온 것이다. 확실히 이번 컴백은 느낌이 달랐고 회사도 멤버들도 사활을 걸어 이루어진 게 꽤 있었다. 음원 사이트의 사전 인터뷰를 찍어 본 것이 처음. 제대로 된 뮤직비디오도 처음. 권순영은 컴백 날 직전까지도 작업실에서 자고 먹고 했다. 마지막 라이브 합주는 순조로웠다. 원래 지인들로 이루어져 소소하던 개인 인스타그램에 팬들이 앓다 갔다. 팬이 늘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실장은 대박이라고 했다. 제일 먼저 아침방송에 섭외가 들어와서 마음이 부풀어 치맥 파티를 했다. 합주실 바닥에 뻗은 권순영은 실실 웃어대고 윤정한은 권순영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그리고 며칠 지난 어느 날. 자고 일어나서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컴백곡이 음원차트 상위권에 자리해 있었다. 윤정한과 멤버들은 일어나 얼떨떨하게 스케줄을 가면서도 어안이 벙벙했다. 형. 역시 소문이 무섭다. 단체 메신저에는 물음표들이 느낌표로 바뀌었고 원인을 알아보니 잘 나가는 대세 배우가 이 노래 좋다며 홍보를 해준 탓이었다. 권순영이 물었다. 이 사람 뭔데. 실장님 프락치야? 모르겠어요. 우리 노래 들었대? 그런가 봐요. 우리 계정에 좋아요도 눌렀어요. 대박이죠. 권순영이 씩 웃는다. 어. 미쳤네.

노래 좋대요. 사람들이.

권순영 덕에. 권순영 덕분에. 네가 우리 팀 살린 거지. 회사 사람들은 권순영을 볼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네 재능이 이제야 빛을 본다……, 며.

 

 

 

 

근처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레지던트 전원우 씨는 얼마 전 운전면허를 취득해 자신감이 생겼다. 새벽 출근길 윤정한을 방송국까지 데려다준다며 전활 몇 통씩 걸었다. 모닝콜 하냐? 덕분에 윤정한은 팔자에도 없던 매니저가 생긴 기분이라 잠결에 양말을 신으며 쏟아지는 질문에 대강 대답했다. 어. 아니, 몰라. 회사 가. 연습해 그냥. 어. 리허설이니까 뭐. 아침방송 끝에 나와서 아주 잠깐 무대에 서. 아니…. 그런 거 말고, 지역방송이야. 윤정한의 대답을 들은 전원우는 호기심이 생겨선 수화기 너머로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렇다면 윤정한은 의문이 생긴다.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마시다가 궁금해했다.

야. 넌 왜 이렇게까지 나한테 열심인데? 그 말을 하고는 뚜껑을 놓친다. 이어지는 전원우의 말에 사레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 나이에 형이 생겨서?

윤정한에게 전원우는 그냥 동생 아니다. 이복동생이다. 태어난 배 다르고 나눠 가진 피 다른데 어떻게 가족이냐 싶겠냐마는 인생이 제 뜻대로 되는 거였다면 이미 우리 밴드는? 주류밴드였겠지. 나는 권순영 짝사랑 접고 걔랑 사귀고도? 남았을 테지. 윤정한은 나이 먹을 대로 먹고 갑자기 나타난 제 동생이 밉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싶었다. 자신은 전정한이 될 수 있을 거라 네버 에버 상상조차 안 하나 이와 다르게 전원우 자신은 윤원우가 될 수도 있었을 거라 여겼다. 전원우에게는 형이 나타난 게 큰 반향이었다. 글씨, 음악인지 뭔지 하는 지 형과는 다르게 원우 야는 미래가 탄탄하잖어. 어깨를 으쓱하는 늙다리 친척들 뒤로 점묘화처럼 찍히는 그런 말들은 솔직히 전원우에게 상처였다. 윤정한에게 상처가 아니었다. 왜 나 대신 상처를 받는지 모를 일이지. 윤정한은 어이가 없었다.

 

이케아 들러서 가구도 좀 사고, 또… 뭐하지? 아침엔 못 만났지만 저녁에는 얼굴 보는 게 가능했다. 스케줄이 끝난 윤정한을 픽업해 쇼핑하고 나온 전원우는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뭘 살지 고민했다. 윤정한은 붕어빵을 한 입 먹고 전원우를 봤다. 너 안 바빠? 응. 안 바쁜데. 오늘 휴가. 바로 대꾸한다. 그래. 할 말 없는 윤정한이 입맛을 다셨다.

 

맞다. 초보운전 스티커도 샀는데 형이 붙여줄래?

 

면허를 따기 전에 차부터 샀던 네가 드디어 기능적인 일을 하는구나. 따는 데도 굼벵이마냥 오래 걸렸다. 윤정한은 살짝 감동할 뻔했다. 왜? 너 혼잔 못해? 전원우는 은근 윤정한에게 의지했다. 챙겨주려고 하는데 외려 챙김을 받는 역할로 치환된다. 나는 막, 차 사고 이런 게 처음이라. 형은 경험이 있잖아. 윤정한은 별 뜻 없이 고갤 끄덕였다. 그러고는 주차장에서 전원우가 봉투 가득 담은 생필품들을 트렁크에 집어넣는 사이,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하자마자 순간적으로 정색한다. 전원우를 흘겨본다. 트렁크를 닫고 손을 털던 전원우는 그 심상치 않음에 다가가 물었다. 윤정한의 일이라면 모두 궁금했다. 누구야? 윤정한은 전원우를 흘끔 보고는 가겠다는 말을 반복한 뒤 전화를 끊었다. 한숨을 내쉰다. 누구냐고 재촉하는 전원우.

누군데. 우리 멤버. 무슨 일인데? 애인이랑 헤어졌대. 그래서? 내가 가야 해. 형이 왜? 야 전원우. 형 일에 끼어들지 마.

그렇게 말을 자르고 머뭇거리다가 빠르게 나가려는 것이다. 그 새에 전원우가 졸졸 따라오며 냉큼 말했다. 형. 내 차 타고 가. 태워줄게. 윤정한은 괜찮다고 했다. 권순영 목소리가 오늘따라…… 어이없어. 애달팠던 탓이다. 술에 잔뜩 취해선 윤정한을 찾으니까 그런 모습이라면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만 알고 나만 갖고 싶은 것.

모처럼의 휴일인데. 내일 새벽 출근에 바빠질 것을 생각하면 아찔했으나 전원우는 이만 만족하기로 한다. 가구는 나중에 사면 되고 태어나 처음 형제가 생겨서 같이 뭘 하는 거 그 자체만으로 좋았으니까. 빨라지는 윤정한의 뒤에서 소리친다. 형! 그럼 사온 거 이거는 형 집에다 놓고 갈게. 그러자 윤정한이 손 인사를 하며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전원우는 안경을 고쳐쓰고 고갤 끄덕인다.

 

 

 

 

저 앞에서 고꾸라지고 있는 저것은 뭔가? 윤정한 집에 도착한 전원우는 문 앞에서 고갤 까딱까딱, 무릎을 세워 쭈그려 앉아있는 형체를 마주한다. 여기서 자면 입 돌아갈 텐데. 전원우는 그를 피해서 살금살금 문 앞에까지 갔으나 앞에 정확히 그가 등을 기대 버티고 있어서 문을 열 수 없었다. 바깥 풍경이 훤히 보이는 복도식 빌라라서 몸이 으슬으슬한지라 코트를 더 여닫으며 남자를 지켜본다. 미동도 없다. 죽었나. 전원우는 잔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저기요.

하씨……, 왜.

 

뭐야. 왜 반말. 이것만 옮기고 나도 빨리 내 집 들어가고 싶은데 이 남자는 비키려는 시늉조차 안 한다.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얼굴은 푹 숙이고 있어서 뭐 하는 건가. 술 취했나? 전원우는 천천히 그의 몸에 맞춰 다리를 굽혔다. 그의 몸에서 술 냄새가 풍겼다. 윽. 진짜네. 이게 무슨 난관이람. 몸을 굽히고 남자의 그 아래로 얼굴을 들이 밀어본다. 아! 깜짝이야. 누구신데요? 남자가 찌푸린 얼굴로 자신을 응망했다. 전원우는 하도 어이가 없긴 없었지만 그렇다고 강도나 도둑은 아닌 거 같고. 진짜 취해서 여기 온 거 같은데 그래 그렇다면 대체 왜? 우리 형을? 남자는 아까부터 성이 나선 뾰로통하게 있었다. 움직이려는 시도조차 안 했다. 가만히 자기를 째려보는 탓에 전원우는 제멋대로 정리하고 말았다. 기분 나쁜 일이 있었나 보군. 아니면 집주인?

누구 시냐니까…. 그때 혀 꼬인 발음이 나온다. 짜증 내는 목소리와 올라간 눈썹에 기분이 나쁜 건 전원우도 매한가지여서 금방 반박한다. 이 집 사는 사람 동생인데요. 그러자 남자가 순식간에 웃는 상이 된다. 정한이 형 동생? 당신이 정한이 형 동생이에요? 언제 반말했냐는 듯 존댓말 해가며 연신 캐묻는데 전원우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말하는 거 보면 형이랑 아는 사이인가 본데 형 찾으러 왔나. 근데 어떡하지. 형도 누구 찾으러 갔는데. 전원우의 머릿속에 착착 정리되는 시나리오.

정한이 형 동생은. 와, 실제로 처음 보네. 몸도 못 겨누는 남자가 비틀대며 일어나기에 전원우는 그를 부축했다가 뒤로 살짝 물러났다. 설마! 몰래 잠입한 기자면 어떡하지?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데. 형이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이번에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전원우. 이를 모르는지 아는지 남자는 몸을 훅훅 턴다. 전원우는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윤정한이랑 아는 사이에요? 네. 어떻게 아는데요? 잘 알죠, 내가 어떻게 모르겠어요. 전원우는 눈을 흘겼다. 저보다 더요? 그 말에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 당신이 누군데요.

먼저 이름 알려주심 저도 알려줄게요.

저요? 권순영.

이번에 컴백했잖아요. 그렇게 덧붙였다. 그럼 이때쯤 윤정한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가. 권순영 전화 받고 한걸음에 그 술집으로 달려왔건만 눈에 튀어야 할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술집 사장님 말로는 한참 전에 여길 떴다고 했다. 윤정한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왜 나를 모르지. 권순영은 의아했다. 멤버들 얼굴을 모를 수 있나 가족이. 생각하다 곱씹어보니 자기도 몰랐기 때문에 뭐 쌤쌤이네. 금방 의문을 거둔다. 정한이 형 동생 있는 거 예전부터 알았지만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지. 그렇지만 분명 어디서 얼굴을 봤다 싶다. 사진이었나. 권순영이 고민하는 동안 전원우는, 올어바웃스페이스구나. 깨닫고 그 자리에서 윤정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패딩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려대서 이마에 난 땀을 훔친다. 윤정한은 통화버튼을 누르고는 밖으로 나간다. 스피커로 전환… 하자마자 들리는 차분한 음성. 형. 형 밴드 멤버가 왔어, 형 집에. 우리 집? 우리 집에 누가? 누군데? 윤정한은 키패드로 권순영 번호를 찾으려던 참이었다. 권순영이래. 멈췄다. 권순영이라고? 응. 권순영.

권순영이 우리 집에. 술 취해서 우리 집에.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권순영은 애인하고 헤어지고 우리 집에 나를 보러…….

 

상황 반전이다.

 

윤정한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간다. 마지막 말이 중요한 거지. 내가 찾아간 게 아니고 권순영이 제 발로 찾아왔다. 나를 보러, 내가 사는 집으로! 이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인지! 윤정한 얼굴이 활짝 펴서는 가로등 불빛에 물이 들었다. 알았어. 내가 집에 갈게. 걔 잘 지키고 있어. 통화를 종료한 윤정한은 이전에 권순영의 부름이 있어 여길 왔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전원우는 전화를 끊고 나니 의아하다. 잘 지키고 있으라니 나를 여기 내버려 두겠다는 심산인가. 하는 수 없이 바닥에 내려놓은 봉투들을 들고 현관으로 들어서려 했는데 권순영이 못 가게 막았다. 권순영이 한 발짝 다가오자 품 안에 안길 수도 있을 만큼 사이가 가까워졌다. 바짝 붙어서는 전원우 몸에 대고 킁킁댄다. 정한이 형 냄새. 전원우 코트 깃에 윤정한과 비슷한 섬유유연제 향이 났다. 뭐 하시는 건데요. 전원우는 흠칫 놀라 권순영을 떼어냈다. 주사가 심하시네. 권순영에게 전원우가 윤정한과 겹쳐 보인다. 마른세수해도 열은 내리지 않고. 아. 정한이 형 보고 싶어. 그대로 전원우의 옷깃을 잡아 당겨본다.

 

근데 형은 지금 어디 있는데요?

형이요? 아, 그게…….

 

윤정한이 헉헉대며 복도로 올라왔다. 권순영과 전원우 둘은 동시에 그쪽을 쳐다본다. 전원우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권순영은 자연스럽게 잡았던 옷깃을 놓고 활짝 웃었다. 네가 불러서 갔더니 언제 여길 왔어. 추궁해도 윤정한 본심에는 실실 웃음이 났다. 권순영이 윤정한에게 다가가 안긴다. 볼이 찌그러진다. 모르겠어. 형 보고 싶어서 그랬나 봐. 오늘의 권순영은 약했다. 약하고, 윤정한은 권순영의 이런 빈틈이 좋았다. 앙큼하네. 술집으로 불러놓고 내 집 가있기. 머쓱한 전원우는 이 틈을 타 집안에 들어가 짐을 놓고 나왔는데 그리고 나와서 마주한 광경은 꽤 흥미롭다. 권순영이 윤정한의 목에 팔을 감고 눈을 맞추니 윤정한은 당장 저 입술에 입술을 박치고 싶었다. 손을 끌고 침대로 가서 옷이란 껍데기는 다 벗기고. 우리는 나체가 되어 서로의 다리를 얽고 날 밝을 때까지 그럴 때까지. 머리가 펑 터진다. 얘 때문에 왜 이러지, 나.

순영아. 너 이렇게 잔뜩 취할 정도로 마신 거야, 걔랑? 헤어졌다는 그놈하고 완전히 쫑난 거였으면. 윤정한은 간절히 바라면서 권순영의 옆얼굴에 코를 비비적댔다. 간지러움에 권순영이 희맑게 웃는다. 응. 이제 안 만나. 마음 한구석이 녹아내리는 대답. 그럼 다 끝난 거야? 앞으로도? 그러나 권순영은 윤정한보다 한발 앞서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형이 이렇게 나 좋아하는 거 티 내는 게 좋아.

윤정한은 고개를 들고 권순영을 떼어놓았다. 알고 있을 거라 생각도 안 했는데. 언제부터지? 윤정한의 눈동자가 모빌처럼 흔들린다. 순진무구한 표정을 열심히 훑다 보면 기어코 패배하는 결말만이.

근데 형. 내가 만약 형을 안 좋아하면. 그땐 어떡할 거야?

윤정한은. 권순영을 빤히 보다 손목을 잡아 제집으로 들어갔다. 현관문 잠기는 소리가 울리고. 가만히 서 있던 전원우가 한참 뒤 계단을 내려간다.

 

 

 

 

초보운전 스티커를 거꾸로 붙였다. 이건 어제 목격한 그 장면 때문이다. 윤정한이 권순영 손목을 낚아채 집 안으로 들어가는 모양을. 안에서 무얼 했을까. 무슨 대화를 했지. 상념에 잠수한다. 전원우가 보기에 권순영은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 같다. 헤어짐이 익숙하니까. 그런데 왜 권순영을 좋아하는 것처럼 구는 걸까, 윤정한은. 잠시만. 애초에. 좋아…… 하나? 전원우는 정신이 팔려 셀로판지를 어떻게 떼고 있는지 기억도 못 한다. 결과물은 동료 레지던트 의사가 지나가며 말해줘서 알게 됐다. 전운보초가 됐네. 어? 다시 보니 전운보초다. 그걸 안쪽에 붙이는 게 아니지. 전원우는 다시 차 문을 열었다. 떼어지지 않는 스티커를 손톱으로 몇 번 긁다가 포기했다. 실은 뗄 마음도 없었다. 마침 윤정한에게 문자가 하나 왔기 때문에. 안 바쁘면 시간 내줄래? 저녁에 우리 공연 잡혀서.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기회는 생겨난다. 전원우는 멍하니 글자를 보다 키패드를 꾹꾹 눌렀다. 노력해볼게. 장소 시간 꼭 회답해줘. 윤정한은 도착 문자의 그 문장이 전원우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AAS는 중력을 노래하는 밴드다. 컨셉의 신비성은 관점 포인트이자 권순영의 캐치프레이즈다. 건반은 신디사이저를 무대에 세팅할 때 은근 잘 보이는 곳에 둔다. 이 또한 권순영의 지시다. 건반 보컬 드럼 베이스. 넷의 자리를 확인하고 자기 위치에 선다. 일렉기타를 조율하던 권순영은 머리 위를 올려다보며 킥을 치던 드럼의 눈치를 받는다. 눈이 마주친다. 뭐. 왜. 드럼이 강아지처럼 눈을 크게 뜨더니 땀 흘리는 권순영에게 다가간다. 형. 저 너무 조명에 묻히는데요? 멀대같은 애가 옆으로 오니 권순영이 안 보인다. 어두운 그림자가 머리 위를 가렸다. 저도 얼굴이 보였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관객들이 저를 알아보죠. 그래도 울상인 막내를 달래줘야 했다. 허리에 양손을 올렸다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낸다. 드럼은 밴드의 중심이야. 걱정 마. 소개 시간을 길게 빼면 되지. 그리고 고민할 그 시간에 박자 연습이나 더 하고. 이에 드럼은 끝말을 들은 건지 만 건지 어찌 됐든 기분은 좋아졌는지 셀카를 찍곤 구석으로 돌아갔다. 얼터네이트 피킹을 한 번 훅, 하고선 목운동을 하던 보컬은 생수를 마신다. 목이 탔다. 라이브는 언제나 대기의 감촉을 생생히 느끼게 하는 의식이니까 이 시간에 언제나 긴장했다. 공연 시작 한 시간 전. 시간이 분 단위로 느껴질 때쯤. 무대를 훑고 긴 숨을 뱉어낸 건반이 드디어 입을 연다. 리허설 시작해. 다들 자세 잡고. 곧 엔지니어석에서 사인이 들어온다. 드럼의 스틱 소리에 맞춰 몇몇이 고개를 까딱인다.

권순영은 인트로의 베이스 소리에 집중한다. 머리가 어디 수족관에 들어가 있는 기분. 눈을 뗄 수 없는 순간이다. 다섯 발자국 차이로 떨어져 있는 윤정한. 자신이 만든 곡을 연주하는 그 손가락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보컬은 나대는 성격이라 친화력이 좋다. 멤버들도 이를 알아 그를 전면에 내세운다. 올어바웃스페이스의 명함 같은 것. 밴드의 기폭제. 흰 피부에 이국적으로 보이는 외모 때문에 멤버들이 비주얼 멤버로 꼽는. 그러니까 프런트맨. 천진난만한 보컬 덕에 첫 곡 시작 전의 분위기는 유하다. 마이크 소리로 이목을 시킨 다음 경쾌하게 인사하는 그의 앞에 삼십여 명 남짓 사람들은 손을 흔들거나 손뼉을 치고 저마다의 기대하는 눈빛을 쐈다. 레이저 빔같이. 보컬이 연주 들어가기 전에 해괴한 농담을 건넸는데 사람들이 웃었다. 예감한다. 잘 될 것 같다고. 기분 개짱 좋다. 이다음 차례대로 한 명씩 인사를 하니 웃음소리가 잔잔한 비지엠처럼 낮아졌다. 덕분에 힘을 얻는다. 어느새 차례가 되어 생동감 넘치는 눈으로 관객들을 훑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리더이자 베이스를 치는 윤정한입니다. 그리고 권순영도. 올어바웃스페이스에서 기타 겸 프로듀싱을 맡은 권순영입니다……. 박수 소리가 고양됐다가 사그라든다. 처음은 언제나 설레는 법이고 세팅된 악기를 정비하고 사인을 주고받노라면 좁은 지하 홀이 순식간에 적막해진다. 무대 위 모두가 악기를 꽉 쥐었다. 순간 드럼의 심장이 무리하게 뛰었다. 왜 이래. 나 진짜 미치겠네. 울상인 채 가슴을 움켜쥐어보는 그때 우연히 뒤를 돌아본 건반과 눈이 마주쳐버린다. 형. 형. 심장 떨려. 나 죽을 거 같아요. 드럼이 입 모양으로 전달하자 배시시 속살거리는 건반. 자애롭게 웃어준다.

 

참아야지, 민규야.

 

윤정한이 눈짓을 주면 시작해. 드럼 스틱 하나 둘 셋 넷…… 하이햇.

 

 

 

올어바웃스페이스가 결성된 날 멤버들은 편집숍에서 같이 가죽자켓을 맞춰 나왔다. 드럼은 흥에 겨워 선글라스까지 충동구매 했다. 보이긴 하니? 야. 이 밤에 선글라스를 끼는 사람이 어딨어. 보컬의 일갈에 드럼은 그게 멋이라며 일관했다. 가죽자켓 깔이 빛나게 다섯이 일렬로 행진하며 널따란 도로를 걷는데 이것이 바로 권순영이 꿈꾸던 청춘. 청춘의 삶. 총칭해서 그래 그런 거. 둥둥대는 드럼 베이스 깔리고 울부짖는 기타리프 들려오면 한 마리의 야생 호랑이처럼 어흥, 울부짖을 수 있었다. 배짱 두둑하고 언제나 낭만에 취약하고 멋에 자존심이 세서 갑자기 울컥하고 벅차오른 권순영은 밴드 하기 잘했다며 하는 이유를 따져봤다. 음악이 좋아서 80% 멋있어서 90% 세계 짱이 됐으니까 80% 도합 250%로 즐기는, 담배 연기, 파묻힌, 지리멸렬, 리드미컬……, 움찔거리는 과도기 인생.

 

일전에 모 잡지사 인터뷰어가 베이스에 대한 매력을 물었는데 윤정한은 이렇게 답했다. 틀려도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점? 그리고는 웃으며 말을 고쳤는데 그대로 실리는 바람에 머리를 긁적이고 한숨을 쉬었다. 농담이었는데. 이 때문에 혹시라도 연주에 성의가 없다는 소릴 들을까 봐서 매번 심혈을 기울인다. 어떤 사운드에 들어가도 소리를 살려주는 게 베이스라 생각한다.

 

권순영과 윤정한이 보컬을 처음 봤을 땐 그의 사투리에 매료되었다. 여름이었고, 카페였고, 덥다고 칭얼대던 보컬을 달래가며 미팅을 마치고 나자 보컬은 짐을 정리하고 서울로 빠르게 올라왔다. 자취의 시작이 밴드의 시작과도 같았다. 보컬의 매력은 확고하다. 고음으로 올라가면 허스키한 목소리를 내지만 자유롭게 미성도 내어버리는 특기에, 목소리로 사람 꾄다고 뒷얘기가 돌았다. 마지막 영입 멤버. 무대에 선 보컬의 모습에 모두가 흡족해했다. 땀에 젖은 흰 셔츠와 애쉬블루 머리. 드럼이 감탄했다. 형 진짜 잘생기긴 했구나. 그날 공연 사진은 호응이 좋았다. 생긴 건 퇴폐적인데 무대 아래선 곰 세 마리를 즐겨 부르는 발랄한 강아지인 점이 반전 매력으로 셀링됐다. 보컬은 소소하게 팬들을 얻고, 팬들의 디엠에 일일이 답장을 썼다.

 

건반은 산타모니카에서 왔다. 손가락이 길고 예뻐 은은히 팀의 자랑이다. 산타모니카에서 어린이 합창단이었고 선교사인 한국인 부모님 밑에서 활동적으로 자랐다. 한참 후에 한국에 와서는 모델 일을 하면서 교회 일원들과 버스킹 공연을 했다. 그러다가 제대해 복귀하던 윤정한 눈에 띄어 페이스북 메시지로 연락처를 교환. 파르페를 한입 떠먹고는, 그때 진짜 안 어울렸어, 그 군복. 호탕하게 웃어대는 건반에 윤정한은 그런 거 다신 안 입는다고 반박했다. 예비군은 어떡하고? 윤정한이 또 한껏 반박한다. 너나 잘해. 그러나 건반은 진짜 잘하긴 잘한다. 신디사이저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악기도. 다양하게 소리 낼 줄 아는 게 많다.

 

원래 바이올린 전공인 드럼은 십여 년을 바이올린만 쳤는데 그 이유가 조용히 좀 했으면 해서, 부모님이 시켰다. 그러다 질려서 예술학교 때려치우고 길거리 공연에 빠져서는 곧장 실용음악 학원을 등록해 드럼 스틱을 잡았다. 원래는 다른 밴드를 했는데 팀이 심각하게 망한 고로……. 첫 밴드는 사기당했다. 내가 돈도 투자했는데! 밥도 사주고 재워주고 다 했는데! 믿었던 형 누나들? 빌려준 돈 들고 튀었다. 결국 드럼 과외를 전전하다가, 겨울. 권순영과 제자와 선생으로 만나 인연이 이어졌다. 보자마자 권순영 눈에 들었다. 첫 번째 합주 날에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멤버들을 당황케 했지만. 올어바웃스페이스는 드럼의 위가 대용량인 만큼 식비가 필요했는데 곧바로 드럼이 공용 카드를 하나 가져와 식비 충당용이라고 공표해버렸다. 선수 친 거다. 다행인 건 그만큼 북을 강타하는 힘이 셌다. 거친 소리를 누구보다 쉽게 제작했다.

 

 

 

 

인이어를 빼고 땀에 젖은 머리와 안경을 치켜올린다. 공기가 뜨거워 눈가엔 물이 맺혔다. 먹먹하던 귀에 들리는 환호. 드럼 소리보다 크게 울리는 심장 박동. 옆을 보니 권순영은 달리기라도 한 듯 숨을 몰아쉬었다. 별 박힌 눈이 반짝거리는 모습이 예뻤다. 정말로. 예쁘네. 넋을 놓고 그 낯을 보다 느꼈다. 어깰 두드리는 손을. 고갤 돌렸더니, 나 잘했어? 묻는 보컬이었다. 어어. 너 잘했지. 윤정한은 대강 맞춰준 후 권순영에게 다가갔다. 기분이 무진장 좋은 보컬이 생수를 마시는데 드럼이 와서 목을 치니 물을 쏟는다. 뭐 좋다고 실실 웃냐! 건반이 손가락을 풀다가 그 재미있는 광경에 둘 쪽으로 휴대폰을 든다. 저장할 셈이다. 씩씩대는 보컬이 그의 휴대폰에 남았다. 윤정한은 조금 아쉬웠다. 리허설이 어땠는진 기억났어도 본 공연은 기억도 못 하게 끝나버려서.

 

그리고 스캔하지 않아도 관객들의 얼굴이 자세히 보여서 전원우의 등장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따져볼 새가 없었다.

 

온다고 한 거 아니었어? 묻는 말엔 주어가 빠졌지만 누굴 칭하는지는 안다. 그러게. 권순영이 바짝 어깰 붙여온다. 윤정한은 대기실에서 놓고 간 핸드폰을 확인했다. 몇 시간 전에 와 있는 문자를 권순영과 함께 이제서야 본다.

 

형 미안 나 오늘 일이 많아.

어떡하지. 앞으로도 더 많아질텐데.

아쉽네. 나중엔 꼭 보러 가도록 할게. 좋은 공연이 됐길.

 

권순영에게 보여주니 고개를 끄덕인다. 저장된 이름이 전원우. 부랴부랴 머릿속에 입력했다. 근데 얘, 머플러 놓고 갔던데. 무슨 머플러? 그날. 짐 놓고 가면서 형 식탁에 놔두고 안 가져갔더라. 아… 그랬어? 어. 다음날에 내가 나가면서 봤어. 그렇구나. 챙겨줘야겠네. 악기와 관객들에게 받은 선물들을 정리하는 멤버들 사이에서 권순영은 이미 기타 케이스를 메고 있다. 윤정한은 멀뚱히 선 권순영에게 뒤풀이는 어디로 갈지 정했냐고 물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권순영은 조금 늦은 답을 한다. 내일 내가 갈까?

어디를?

머플러 전해주러.

권순영은 좀 전 화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네가 왜?

바쁘니까. 형 내일 추가 인터뷰 있잖아. 그리고 갔다가 형 집에서 기다릴래. 데이트하자, 홈 데이트. 

걔가 알아서 찾아가겠건만. 하지만 윤정한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주의자라. 따질 게 뭐 있어. 손을 뻗어 권순영의 볼을 쓰다듬었다. 권순영이 푸흐흐 웃으며 얼굴을 비비적댄다. 충분했다. 전원우가 윤정한 보금자리에 발을 들이는 건 얼마든지 기다렸다가…….

 

 

 

 

고개가 갸우뚱. 일부러 해놓은 건지 실수인지 짐작할 수 없다. 주차장에 들어서자 요상한 스티커를 붙인 차가 발을 멈추게 했다. 해도 해도 너무 웃겨. 전운보초? 전운보초래. 진짜 초보긴 한가보네. 권순영은 사진을 찍을까 말까,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가 속으로 비웃으며 휴대폰을 꺼낸다. 윤정한이 준 전원우의 번호로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 자리를 지나치려고 했다. 지나치려는데 여느 펄프픽션처럼, 주인공은 늘 요맘때 등장하는 법이라.

뭐예요.

걸렸다. 권순영이 크게 빵 터진다.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전원우는 경계심이 가득. 권순영은 예상치 못한 차주의 모습에 크게 비웃었다. 저기요. 저건 새로운 이름이에요? 예? 지금 무슨 말씀을. 같은 전 씨니까요. 허파에 바람 빠진 듯 계속 킥킥 댄다. 내가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쓱 닦아내는 권순영에 전원우는 불쾌해하기보단 정말 이해 안 되는 듯 굴었고. 뭐야 웃지도 않네. 네. 안 웃겨서. 다시 만났음에도 여전히 불완전한 대화만 주고받았다.

초보 짐승이 타고 있어요. 그런 거로 해야 했나. 강렬하게.

어우. 그건 더 이상해. 전원우가 진지하게 고민하자 권순영은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가방에서 흰색 머플러를 꺼냈다. 저기요. 전원우 씨. 헉. 근데 동생인데 왜 전 씨에요? 왜 성이 다르죠?

그걸 이제 알았어요? 이복동생이니까.

가족이라는 거에요, 아니라는 거에요?

가족이죠.

아닌 거 같은……. 권순영의 머플러가 떠나간다. 낚아챈 머플러를 목에 건다. 손길이 느긋하다. 전원우는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형이랑 유독 친해 보이던데 사귀는 건 아니라고. 그런데 쟤를 왜 좋아하는걸까. 그것도 쌍방이 아니라 일방향으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확실한 거라면 권순영은 정말 쓰레기다. 지난번 자기를 버려두고 잡아끌던 권순영 손목에, 윤정한의 다급하고 애타는 표정에 구미가 당겼는데. 왜 그걸 너만 봐야 하는지. 전원우는 권순영을 노려봤다. 그리고 그토록 머릿속에만 맴돌던 질문이 튀어 나갔다. 저도 모르게.

 

그날. 집에서 둘이 뭐 했어요?

 

XX. 했는데. 말하면 안 되겠지. 권순영은 전원우의 안경 너머 눈빛에 땀을 삐질 흘린다. 현관문에서부터 옷에 손 넣고 키스했는데. 형이 침대에 날 눕히고 내 옷 안으로 들어와 혀로 배를 핥고 쓸어올렸는데. 나체의 다리를 얽고 그랬는데 그게 진짜 좋았는데 으흐흐. 그렇지만 다르게 말했다. 원우 씨가 가져 온 거 그거 정리했어요. 하지만 전원우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일말의 가능성을 재보는 것이다.

 

혹시 정한이 형이 그런 말도 했어요?

뭐를요.

고백 같은 거?

 

고백이면 고백이고 아니면 아닌 거지. 같은 건 뭔데. 권순영의 직감이 맞았다. 쟤 정한이 형 존나 좋아하네. 은근한 짜증.

 

나 좋아한다고 했으면 뭐. 원우 씨가 어떡할 건데요.

진짠지 아닌지만. 알려줘요, 그것만. 진짠지 아닌지…….

나 좋아하는 거 진짜예요. 형이 나 엄청 좋아해.

순영 씨한테 고백한 적 있어요?

고백은 안 했는데, 보이잖아요. 그리구 안 하는 게 아니라 형은, 못 하는 거. 못하는 건데?

 

나인데. 형을 더 오래 본 사람이 나라서 내가 더 잘 아는데. 가족들보다 더 본 사이. 자주 몸 붙이는 사이. 그 십 년 넘는 세월에 누구도 끼어들면 안 되는 사이로 정의되는 관계다. 심지어는 권순영 자신도. 근데 저 의사 놈은 뭔가. 언제부터인지는 형이 안 말해줘서 몰랐지만 이제 알게 됐으니 어쩌겠어. 게임이다. 느껴질 정도로 그득그득한 저 소유욕을 꺾어주고 싶다.

 

차만 가득한 야외 주차장을 나와 커피 한 잔씩 사 들고 가까운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겨울날의 한낮은 차갑고 빛이 났다.

우리 노래 들어볼래요?

침묵을 지키던 권순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공연장에 못 왔으니까. 그 명목으로 현장에서만 선보였던 스폐셜트랙의 가이드를 재생했다.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는 건 단 한 명을 위해 들려주는 자작곡이라서일까.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전원우의 옆얼굴을 보다가 노래는 중반을 넘어섰다.

어때요?

글쎄요. 딱히.

딱히? 지금 지나치게 솔직했다. 이런 게 별로면 무슨 노래 좋아하는데요?

힙합이요.

감흥 없다가 바로 튀어나오는 취향에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 전원우는 뭐가 좋은지 살짝 미소를 지었다가 거뒀는데, 혹시 지금 자기가 이겼다고 느끼는 건 아니겠지? 고드름이 꽂힌 것마냥 권순영 마음이 차갑게 갈라졌다.

참나. 저도 힙합 할 줄 알거든요?

구시렁대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머플러를 왜 순영 씨가 가져다준 거에요? 그냥. 내가 가져다주고 싶으니까. 하지만 전원우는 그게 아닌 걸 안다. 권순영이 연기를 내뿜고 말을 고친다. 아, 진짜. 정한이 형 집에 안 왔으면 좋겠어서. 됐어요? 주머니를 뒤지니 담배 한 갑만 나왔다. 아씨. 이제 할 말도 없네. 전원우는 추위에 빨개지는 손을 머플러 사이로 넣었다.

아무 말이나 하세요.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담배를 무는 권순영. 담배가 썼다.

전원우 씨는.

네.

돈 얼마나 버세요?

뭉개지는 발음이 새어 나오고 연기가 올라간다. 그 사이로 전원우의 말쑥한 표정과 마주쳤다.

정말로 아무 말이나 하시네요.

그러면 저기서 뭔 일 해요?

권순영이 뒤를 돌아보고 목을 긁적였다.

저기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해요.

아, 내가 그런 거 잘 몰라서. 그리고 한 박자 뒤에서 구태여 덧붙인다. 의사 같은 메이저 직업이요. 그런 거 잘 몰라요. 돈은 나보다 많이 벌겠지.

모르는 거치곤 잘 아는 거 같은데. 반박하자 권순영이 당황해서 헛기침했다. 커피 컵 안 카페라테가 빠르게 식어갔다. 전원우는 코끝이 빨갛게 물든 권순영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웬일인지 새삼 이목구비가 귀엽다고 생각한다. 생긴 건 어려 보이는데 머리는 오래된 성인이나 해탈한 승려 정도 되는 멘탈을 가지고, 자기만의 철학이 있어 보이는 게 복잡하게 살면 살았지, 쉬운 성격은 아니겠구나 싶다.

 

순영 씨는 노래 안 하나요?

해요. 하고 싶을 때. 아주 완벽히 가끔이지만.

아, 그러시구나.

 

시시한 큐앤에이 시간이라도 되는 듯이 서로 간을 본다. 별 대화를 다 하네. 권순영은 아스팔트 바닥을 캔버스로 툭툭 쳤다. 돌멩이를 빤히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든다. 주근깨가 있네. 하염없이 눈을 맞댄다. 담배 연기를 고스란히 뒤집어쓰면서도 도망가지 않는 마주친 눈빛이 신선했다.

 

악기…… 배워본 적 있나.

어렸을 때 바이올린을 잠깐 해봤어요.

와. 상상 안 가는데. 바이올린 치는 모습.

바이올린은 치는 게 아니라 켜는 건데요.

 

켜는 건데요. 전원우는 왜 다른 말을 하냐는 듯이 멀뚱했다. 또다. 또 나는 당했고. 아, 예. 저는 기타를 쳐서요. 권순영은 담배꽁초를 발로 밟아 끄고선 쓰레기통 안으로 내던졌다. 바람이 더욱 차진 거 같다. 코를 훌쩍이는 그때 전원우가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는 손을 내밀었다. 휴대폰 줘봐요. 그 말에 머뭇거리다가 홀린 사람처럼 휴대폰을 건넸다. 받아든 전원우는 키패드로 자기 번호를 찍는다. 그런데 저장명이 떴다.

이미 저장되어 있네. 스토커예요?

아니 아니, 형한테 받았어요. 생각을 좀…. 급하게 휴대폰을 빼앗은 권순영이 통화 버튼을 누르자 전원우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숫자 열 한 자리가 찍혔다. 권순영은 저장하라며 눈짓을 보냈다. 나중에 공연 초대하거나 이럴 때 소식 빠르게 전달할 수 있으니까 내 번호 있는 편이 좋을 거예요. 님이 우리 팬카페 가입해서 스케줄 찾아볼 것 같진 않아서. 맨날 정한이 형 잡아놓고 귀찮게 굴지 말고.

뻔뻔하네. 전원우의 눈썹이 일그러진다. 권순영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남은 커피를 쭈욱 들이켰다. 그 순간 갑자기 전원우가 들고 있는 휴대폰에서 연락이 왔다. 순식간에 둘 다 집중한다. 나 가봐야겠네. 호출 들어왔어요. 전원우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시간 뺏어서 미안해요. 나중에 뭐라도… 치료라도 받으러 올게요.

말이 참…. 아프겠다는 거군요.

농담이죠. 병원을 놀러 올 순 없잖아요.

남은 커피를 마시려다가 그 말에 웃음이 잇새로 나왔다. 권순영은 대충 손을 흔들고 뒤로 뒤뚱뒤뚱 몸을 흔들며 걸어가다 뒤를 돈다. 전원우는 눈을 끔뻑인다. 그때 무언가가 생각나 성큼성큼 걸어서 권순영의 팔을 잡았다. 저기요. 갑작스레 돌아본 권순영은 순진무구했고 그런 권순영에게. 전원우가 안경을 툭 치켜올린 후 말했다.

 

저는 소아청소년과라서요. 순영 씨는 치료 못 하는데.

아, 예. 그쵸. 서른이니까.

정신과 가세요.

네?

가보셔야겠던데…….

 

머리 옆을 가리키며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권순영의 표정은 귀신이라도 본 듯 시시각각 변한다.

 

미,

미,

미친 새끼! 저 저 미친 새끼 진짜! 저 새끼 진짜 개 돌았나 봐……. 뒤도 안 보고 가는 전원우를 한참 노려본 권순영은 사라진 어이를 되찾기 위해 발을 퍽퍽, 바닥을 쳤다.

 

 

 

 

병원으로 들어서서 제 자리로 가는 동안 전원우는 깊이 생각해봤다.

윤정한을 계속해서 신경 쓰는 이유에 대해.

어쩌면 처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등장은 드라마 속 뜬금없는 악역의 죽음처럼 뜬금없이 탄생. 전원우의 새엄마인 <윤정한 친엄마 라 여사>가 윤정한을 소개했다. 전화로. 라 여사 직접 손 끌고 데려올 줄 알았더니. 제 발로 온다는 걸 말리지도 않고. 즉흥적이었다. 전원우는 스트로우를 씹으며 탁자를 툭툭 두드렸다. 라 여사는 전자 기계 같은 목소리를 내며 통보하는 식으로, 그래. 내 아들이 너 보러 내일 온대, 라고 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이 만나고 싶어서. 직접 제 발로. 그리하여 매미가 죽었는지 고요했던 한적한 여름날에. 사람도 별로 없던 한낮 카페 안에서 전원우는 자기 최초의 형제를 그때서야 만났고 변화의 지점에 있는 가족관계에 적응하기도 전, 쿵 쿵 쿵 쿵. 성큼성큼 걸어오는 하얀 얼굴에 넋을 놓았는데.

야. 그러니까 네가 전원우고.

어… 네. 안녕하세요.

우리 엄마 애인의 아들이고. 저기 병원에서 일하고.

네.

이제부터 나랑 긴밀해지려고?

네?

자리에 앉지도 않고 캐묻던 윤정한이 입술을 꾹 물었다. 많고 많은 수식어 중 왜 긴밀하다는 표현을 쓰는 걸까. 전원우는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전에 윤정한의 얼굴이, 창백한 얼굴이 너무나도 사연 있어 보여 말을 못 했다. 예뻤다. 예쁜 게 티가 났다. 나 이런 취향인가? 전원우는 살면서 만났던 남자들과 여자들의 수를 셌다. 이는 숫자에 대한 강박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덮어지는 외모들. 얼굴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안 나는 게 좋았다. 이 사람이 나타났으니까. 그리고 순간이었다. 윤정한의 눈동자에 얕은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게. 전원우는 심약해진다. 왜, 왜, 왜, 왜 울지? 말을 마치고 가만히 서 있던 윤정한이 심각하게 얼굴을 구겼고 전원우는 느린 반응속도로 테이블 위의 냅킨을 건네다가, 시발…. 낮은 읊조림에. 잘못 들었나? 두 눈을 깜빡였다.

야, 나는 너 같은. 너 같은 동생을 내가…….

싫구나. 급격히 이 자리가 어색했다. 싫다고 말하려고 불렀구나. 하지만 그걸 굳이 만나서? 윤정한은 숨이 찬 모양이다. 숨을 색색 내쉬는 동안 전원우는 큼큼거리며 기다렸다. 그리고 냅킨을 다시 테이블 위로 정리하고선. 물었다.

싫으세요?

얼마나 원했는데 짜증 나게 이제서야 오는데!

창백한 윤정한이 무너져내린다. 이게 무슨 일이지. 윤정한은 테이블 옆에 쭈그려 앉아 전원우를 응망했다. 전원우는 그제야 일어났다. 어, 어떡해야 할지 몰라 일단 윤정한과 자세를 맞췄다. 윤정한은 어렸을 적 부모님의 싸움을 혼자 지켜보는 게 얼마나 창피하고 고됐는지. 성인이 돼서야 알았다. 그때 아무나 있었더라면. 동생이든 형이든 누나든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살진 않겠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바랐다. 그러나 이미 문 닫은 가족 관계는 변화 없이 지속했고 그렇게 나이만 올랐다. 외동으로 자라서 옆에 누가 있는 게 익숙지 않다. 사귀는 친구들과는 함께 있고 싶다가도 금방 또 혼자 있고 싶어졌다. 하지만 친구가 없는 건 싫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인데 인정하기 싫다. 곁에 늘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연애를 하면 상대방은 부담스럽다고 했다. 떠나갈까 불안함에 다 퍼주게 돼서. 그래서 부족한 사랑만 받았나. 근데 어쩌자는 건지. 이 나이 먹고 가족이래. 갑자기 동생이래, 쟤가. 어떡해야 해. 뭐 하라고 나보고.

 

친양자로 입양하면 아예 가족이 되는 거야.

귓가에 엄마의 음성이 죽은 위성처럼 맴돌았다.

 

그래서 윤정한은 순리처럼 전원우에게 의지했다. 동생이 나타났으니 어렸을 때 하려던 거 다하려는 목적이었나. 전원우는 하루에도 수십번 울리는 휴대폰에 마음을 다잡고 통화버튼을 눌러야 했을 뿐더러.

 

계란을 깼는데… 노른자 하나가 터졌어, 원우야.

언제 와? 형 힘들어. 같이 영화 볼래? 맞다. 아 나 영화 안 좋아하지….

원우야… 내 집에 와서 형 어깨 좀 주물러 줘봐 봐… 지금쯤이면 집에 와야지. 내가 얼마나 더 기다려?

원우야. 당장 나 좀 웃겨줘. 아… 네 개그는 재미없지. 미안.

 

터무니없어도 너무 터무니없었지만 스물아홉 인생 중반에 형은 처음이라 어쩔 줄 몰랐다. 형제들은 자주 이런 통화를 하는 건가. 동료 의사들에게 몇 번 물어봤지만 원래 그렇게 서로 놀려먹지 않냐며 비슷비슷하다고 인정해버려서 그렇게 믿었다. 도중에 전화를 끊을 수도 없었다. 전원우는 윤정한의 행동을 형 노릇이라고 일컬었다. 그런 전원우의 기대에 부응하듯 윤정한도 자꾸만 자신을 형이라 지칭했다. 주어는 그렇게 정해졌다. 010 아래 익숙한 여덟자리 자꾸만 눈에 밟혀 들어보면 윤정한의 부름에 전원우는 늘 고역을 겪고.

 

형. 저 지금 병원인데요.

형. 제가 어떻게 지금 가요. 곧 교수님 오시는데.

형. 저 회의, 회의. 할 말은 용건만 간단히.

전원우입니다. 네. 여보세요? 아, 형……. 모르는 번호로 전화하지 마요. 차라리 형 이름이 뜨는 게 나으니까.

 

알겠어. 근데 통화 못 해? 그렇게 잠깐도 안 돼? 실망이다 원우야. 난 할 얘기 많은데 너무하네.

 

윤정한은 서러움을 숨기지도 않고 가득 줬다. 거기에 홀린 듯 빨려들어간 것이 죄. 부재중 전화가 윤정한 이름으로 쌓여가는 걸 보며 전원우는 그것이 사랑의 형태라고 믿었다.

 

 

 

 

공연 이틀째 저녁에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멤버들이 땀을 훔치며 열기를 식힌다. 공연 후에 미끄러져 오는 뜨뜻함이 좋다. 후덥지근한 산소도. 등에 가시가 돋친 듯 마냥 뜨거운 것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 일렉의 니켈 선을 몇 번이고 때리던 손가락에 열감이 남으면 스스로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학교 성적보다야 상위의 보람이고 이상의 가치였다. 뿌듯하다. 나만큼 연주하는 사람 또 없을 거라 확신한다. 기분이 좋은 권순영이 윤정한을 따라 걸으며 전원우를 만났던 얘길 했다. 원우가 그래도 다정한 애야. 그렇게 말하던 윤정한의 입꼬리가 올라가던 것을. 권순영은 알아본다. 기분이 더럽다. 대기실로 들어와 입술을 삐죽 내민 채 기타를 내려놨다. 금색 머리칼이 달라붙은 이마를 수건으로 씻어 낸다. 둘이 동갑인데 반말 안 했어? 불시에 윤정한이 물었다. 동갑이었어? 그러고 보니 나이 물어볼 생각도 못 했다. 권순영은 뭐가 있었냐는 듯 태평하게 굴었다. 그렇게 보여야 했다. 좋아. 다음엔 반말 간다. 동갑이라는 고급 정보도 알았고. 힙합이 더 좋다는 걔 취향도 알았고. 홀가분하게 끝낼 줄 알았는데 가슴 속에 돌덩이가 얹혔다. 사레가 들릴 것 같다. 멤버들이 악기를 정리하는 도중에 소파에 널브러진다. 힙합 힙합…. 무슨 노래 좋아해요? 힙합이요. 참나…. 

때마침 지나가는 보컬. 머리에선 파란물이 뚝뚝 떨어지는 거 같다.

 

형. 우리 다음 앨범. 힙합 느낌 어때요? 중간에 랩 여덟 마디 정도 튀어 나가고.

강냉이 튀어 나가고 싶냐?

별로야?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만들어 봐.

유일하게 호의적인 건 건반뿐이었다.

정말?

어. 나쁘지 않아. 랩을 넣을 곳이 있나 한 번 고민해봐야지 뭐.

안돼! 망해!

무슨 소리야? 우리 망했어? 마침 저쪽 바닥에서 자고 있었는지 화들짝 놀라 일어나는 드럼. 망하더라도 락페랑 펜타포트, 썸머소닉은 나가보고 망해야지……. 얼굴부터 몸까지 감싸고 있던 담요가 떨어져서 머리가 산발이 됐다. 보컬이 지나가며 다리로 등을 민다. 걸리적거려, 비켜. 키도 큰 놈아.

야, 막내. 너 바이올린으로 그 학교 들어갔다 했지. 권순영이 묻는다. 엉. 맞아요. 바이올린이 치는 게 아니라 켜는 거야? 글쵸. 보컬이 끼어든다. 근데 왜 드럼으로 갈아탔냐? 드럼이 더 좋아서? 물음에 드럼은 또냐는 표정과 함께 연설을 시작한다. 내가 형들한테 얘기하지 않았어요? 저는 밴드 하고 싶었어요. 가만히 서서 박수받는 거 싫어요. 못 움직이는 게 고역이에요. 보잉만 몇천 번을 하는데 못하면 맨발로 쫓겨나고 그랬다니까. 근데 드럼은 그렇지가 않으니까. 하는 거죠. 열심히 움직이는 게 좋아서. 진지한 고백에 저절로 숙연해지는 사람들이 마음 한구석, 동질감을 느낀다. 그런 순간 실장이 들어와 기분 좋은 얼굴로 문 앞에서 팔짱을 꼈다. 산뜻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린다. 오늘 관객 수 몇 명이었게. 모두가 그녀를 주시하고 그 울림에 서로를 마주치면서 눈을 깜빡였다. 실장이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얼굴들이 서서히 퍼진다. 오늘 공연은 대박. 예상했던 인원보다 훨씬 많은 관객이 공연장을 방문했고 현장 판매 표도 비축분까지 다 팔렸다. 긴장한 탓에 연주에만 집중했나. 왜 그 사실을 몰랐지. 멤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어떡해. 우리 뭐해야 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밖을 두리번거렸다. 실장은 휴대폰을 하나 쥐여줬다. 순식간에 웅성거림이 쌓인다. / 트위터 올리자. / 무슨 말 하는데? / 우리 공연 봐준 거 고맙다고. / 어떻게 로그인해. 이거? / 넌 여전히 기계랑 안 친해졌니. / 대박이야. 밖에 봐봐. 아직도 집에 안 가셨어. 나가서 한 장 한 장 사진 찍어드리면 안 돼? 그래도 돼요, 누나? / 맞다. 나 아까 꽃다발 받았는데. / 뭐라고 쓰지? 누가 쓸래. / 내가! 나 먼저 할래! / 민규 먼저 쓰고 그다음에 차례대로 쓰자. / 야. 로그아웃되지 않게 조심해. / 아씨…. 저기 있네. 내 꽃다발.

토독토독. 화면을 채우는 사이버 글자.

 

이틀간의 공연이 끝났습니다아아.. 찾아와준 여러분 정말정말 감사해요!! 대박 감동ㅠ 힝.. 올어스는 앞으로 남은 공연을 멋있게 해내겠습니다!! 담주 크리스마스이브!! 더블 엑스트 홀에서두 뵈어요>< 자세한 시간은 공지 담당 슈아형이 올릴 거에요..ㅎ 따듯하게 입고 와.. 사랑해 ♥ -민규가 씀-

 

연애하냐? 말투가 왜 이리 애 같냐. 멋있게 좀 써 봐. 보컬이 구시렁댄다. 다닥다닥 붙은 멤버들한테로 윤정한이 다가갔다. 쟤 이주 뒤에 스물이라 아직은 애 맞아. 보컬은 드럼이 건넨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흐히흐히헤헤효. 아. 기분 대박 좋네. 키패드를 빠르게 강타하는데 무슨 글을 쓰는지 화면을 흘깃 본 드럼이 약을 올린다. 뭐야. 지가 더 하네. 보컬이 째려봤다. 이 상황에 권순영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낸다. 윤정한은 꽃다발을 들어 향을 맡고 있었고. 권순영은 하나도 완성되지 않은 기분으로. 눈치를 슬쩍 보곤 타자를 빠르게 쳐 나간다.

 

야 전원우 너 어디냐

나 너 좀 만나서 할 말 있거든

니 못 올 테니 내가 갈게

그리고 흥이다 어? 

우리 동갑이거덩? 반말 해도 못될 거 없잖냐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끼워 넣고 일어서 멤버들에게 다가갔다. 나도 하나 쓸래. 자연스럽게 휴대폰이 권순영 손으로 옮겨갔다. 팬분들 정말 감사하고 사랑해요. 그리고 모자를 눌러 쓴다. 소파에 대충 걸어둔 외투를 주워 걸쳐 입고 기타 가방을 집었다. 유일하게 보고 있던 건반이 말문을 연다. 순영이 어디가. 잠깐 갈 데 있어서요. 너 뒤풀이는 안 가? 갔다가 거기로 바로 올게요, 형. 주소 남겨줘. 영 속을 알 수 없는 권순영이 밖으로 사라져버리자 윤정한은 문 앞까지 나왔다가 들어갔다.

 

 

기타 케이스 덜렁 메고 지하철 안을 뛴다. 전원우가 마침 이 근처를 지나고 있다고 한다. 공연하는 내내 집중이 안 돼서 미치는 줄 알았다. 베이스를 두들기는 윤정한을 시시때때로 흘깃흘깃 쳐다보는데 자꾸 전원우가 진해졌다. 걔가 윤정한이랑 사귀면 어떡하지. 정말 어쩌지. 둘이 손잡고 걷기도 하려나. 날 선 눈매 전원우가 권순영 머릿속에 여러 차례 찍혔다. 형이랑 키스하고 으스댈 모습까지 떠올리니 속이 뒤집힌다. 발화된 생각이 뇌를 잡아먹어 갔다. 기생충도 이 자리엔 공생하지 않을 듯싶게. 출구에 가까워지자 입술 꽉 물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흰색 더플코트의 전원우. 곱상한 낯짝을 발견한다. 전원우는 기다린다던 계단 앞에 서 있었다. 야! 큰 소리로 불렀다. 상기된 뺨을 찬 바람이 치고 가는데도 달리기를 멈출 순 없다. 전원우가 고갤 들자 눈이 마주쳤다. 앞으로 온 권순영은 눈 맞추기 좋은 키인 것 같다.

야! 미친놈아. 넌 가족이잖아. 가족끼리… 시발 가족은 그럼 안 되는 거잖아! 가족, 하… 나 개 어이없네. 흩날린 머리를 털었다. 가족끼리는 말도 안 되잖아. 어? 

권순영은 토해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수천 개의 단어를 더 토해낼 수도 있다. 허리를 굽혀 무릎을 양손으로 잡은 채. 헉헉대는 숨을 고르지도 못하고 막 내뱉으니 딸려오는 불안정한 호흡. 머리는 싸이키 조명이라 핑핑 돌아간다.

악!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

권순영은 쉽게 흥분했다. 권순영은 전원우가 윤정한을 좋아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 나도 안 사귀지만 남하고도 안 사귀었으면 좋겠다. 그건 예전부터.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권순영이 윤정한에게 품은 마음으로 모든 게 곪아도 그것만은 영원했다. 윤정한이 만났던 애들은 권순영 때문에 나가떨어졌다. 물론 윤정한도 어차피 찢어질 거란 걸 알아서 그 이상으로 누굴 만나지 않았지만. 그런데 이번은 더욱 화가 나는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동생이라는 놈이. 윤정한과 옆에서 통화하는 걸 들어보면 충분히 애인이고도 남았다. 그런 점이 싫다. 권순영은 자기가 특이하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저 남들보다 욕망이 한 단계 클 뿐이다. 하지만 권순영이고 뭐고 알 리 없는 전원우는 어깨를 으쓱하고 끝이다.

 

너 정한이 형 왜 좋아해? 좋아하지 마.

권순영 목소리가 버석했다. 전원우는 어이가 없었다.

넌……. 사람 마음 갖고 놀면서 말이 많아.

뭐라고 개자식아?

우리 형이 진짜 너한테 좋아한다고 하긴 했어?

가짜로 좋아하는 것도 있냐?

넌 그러는 것 같길래.

야. 웃기지 마.

그럼 이제 누구도 안 사귀겠네.

 

권순영이 마른 눈으로 눈물 없이 울먹거린다. 슬퍼서가 아니라 화나서였다. 나랑 우리 밴드 무조건 잘돼야만 하는데. 앞으로 그럴 일만 남았는데. 문제 생기면 안 되는데. 얘 때문에. 얘가 끼어들면 안 되는데. 형이 얘랑 사귀면 안 되는데……. 공명하고 있는 동안 전원우는 물었다. 근데 왜 나한테 화 내. 내가 뭐 잘못했어? 권순영은 눈을 굴린다. 전원우는 부스러질 것 같은 권순영을 앞에 두고 생각했다. 사랑하는데 사랑한다고 말도 못 하는 건 너나 나나 매한가지. 하지만 권순영은 위치가 다르다. 윤정한 마음 알면서 딴 놈들이랑 사귀었는데 사랑받을 자격이, 너한테 있겠어 감히.

 

누가 더 진심으로 좋아하는지는 전적으로 형의 선택에 맡겨야 하는 거 아냐?

 

굳어버린 권순영은 전원우를 빤히 쳐다본다. 새침한 눈빛이 메스껍다. 사람 속을 은근히 파고드는 것이, 심기에 거슬린다는 게 뭔지 아나. 내 눈빛 보고 모르진 않을 텐데.

 

원우야, 전원우.

어.

선 넘지마.

이미 넘었어.

그럼 너 한 대만 패도 되냐.

얼굴 말고 몸 위주로는 가능해.

얼굴 때리고 싶은데.

상처를 아가들이 무서워해서.

 

혀의 맛이 쓰다. 야, 잠깐. 혀도 맛이 나나? 미뢰가 혀에 있는 건데 혀가 맛이 없을 리가. 권순영은 배고픔에 잉태하듯 밴드명을 껴안고 자멸했고 그런 저와 다르게 번듯한 직장에 번듯한 벌이와 번듯한 지위까지 챙겨간 전원우를 통해 애먼 신경을 자극받는다. 그리고 거기에 첨부되는 제 몫의 올곧은 자격지심.

 

내가 널 질투하게 만들지 마.

그럼 사귀어. 나도 형한테 집착 좀 안 하게.

(미친 놈….) 못 해.

왜 못 해.

권순영이 새끼 강아지처럼 축 늘어진다. 못하는 이유? 이유가 있을까. 이유라기보다는 변명이지만.

아! 못하면 못 해. 등신아. 못 해!

 

그러고선 전원우는 붙잡힌다. 야. 일단 가지 말아봐. 어? 나랑 말 좀 하다 가. 그리하여 전원우는 지하철을 타러 가던 발걸음을 돌려 권순영이랑 술집에 들어갔고 권순영이 하는 얘길 들었다. 윤정한을 왜 좋아하는지부터, 왜 고백을 못 하는지까지. 권순영은 생각보다 감정적이고 조심스러웠고 연약했다. 고작 그런 거였어? 사귀자 한마디 못하는 이유가. 전원우는 도통 자신에게 대입할 수 없었으나 권순영은 사랑의 형태라고 믿고 있었다. 너도 느껴? 사람은 입체적이잖아. 자꾸만 떨어지는 권순영의 턱을 한 손으로 잡으며 전원우는 고갤 저었다. 그건 나약한 거고 넌 그냥 확인사살이 필요한 것뿐이야. 권순영의 표정은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멍청하게. 엠프를 연결한 것도 아닌데 하필 이럴 때에…… 심박이 뛰논다.

전원우…….

 

 

 

 

다음 날. 겨울이 뼈에 달라붙는 시기가 왔다. 아침부터 눈바람에, 옷 위로 눈이 가득 쌓였다. 전원우는 핫초코를 입안에 머금었다. 머그잔을 달궈놓자던 윤정한의 의견을 듣기 잘했다. 윤정한은 스웨터로 갈아입고 방으로 들어왔다. 넌 언제까지 전운보초로 살 거야? 계속 붙이고 다니네. 창밖으로 보이는 전원우의 차를 보며 말한다. 전원우도 멍하니 그걸 본다. 떼는 걸 깜빡했다고 응답하긴 했으나 속으로는 다른 답을 일궈냈다. 형이 계속 신경 쓸 때까지. 전원우 손가락이 머그잔을 감싸 열을 복사해내고 윤정한 손가락은 핸드폰 위를 돌아다녔다. 전원우가 허리를 당겨 일시 중지한 노트북을 두드렸다. 더 안 봐? 화면에는 잠시 멈춘 영화 한 편이 담겨있다. 윤정한이 핸드폰을 흘깃 본다. 어. 미안. 나 급한 일 생겨서. 그건 다음에 보자.

어디 가는데.

두꺼운 패딩을 껴입은 윤정한은 양말까지 신고 현관문 앞에 섰다.

순영이.

또 헤어졌대?

윤정한은 말이 없었다. 윤정한이 말이 없어지면 전원우가 말을 시작했다.

걔 애인 본 적은 있어?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원우야.

형. 나는 걱정 같은 게 아니라….

전원우는 하려던 말을 삼키고 윤정한이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럼 그냥 하지 마. 괜찮아.

그리고 현관문이 닫힌다. 혹시나 해서 열었던 괄호는 가루도 남기지 않은 채 아스러진다. 윤정한은 권순영에 대해서 다 알까? 형이 모르는 것을 내가 아는데도……. 이것은 전원우가 남긴 비완성형 물음이었다.

 

 

 

윤정한이 도착하기도 전에 권순영은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나는 왜 이럴까. 쿵쿵. 나는. 왜. 공연 이틀째의 뒤풀이는 당연히 안 갔다. 전원우랑 있다가 헤어져서는 윤정한 집 앞에서 대신 윤정한을 기다렸다. 문 앞에 기대 잠을 청하려니 윤정한이 보폭을 크게 맞추며 빠르게 걸어왔다. 처음엔 화가 난 줄 알았다. 윤정한의 모션이 스냅북 넘기듯 뚝뚝 끊어졌고 눈 살짝 감았다가 뜨니 권순영의 얼굴을 두 손에 담고 있었다.

전화는 왜 안 받았어? 순영아. 다 너 기다렸어.

미안해. 진짜 갑자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애들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나는 계속 전화 걸었는데.

윤정한은 권순영의 눈가를 엄지손가락으로 매만졌다. 눈물이라도 닦아주는 걸까 싶었다. 한동안 그렇게 있다가 권순영을 일으켰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고. 자리를 비켜서 아무 말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권순영이 빠르게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는데…… 제지당했다. 윤정한이 문고리를 잡은 채 문 앞에 섰다. 얼굴만 빼꼼 보이는 것이다. 이때부터 권순영은 애가 탔다. 그리고.

집에 가.

그 한마디가, 그 한마디에 머리가 아프고 짜릿했다. 광활한 운동장 한가운데로 수직 낙하하는 감정.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야. 권순영은 한 발짝 다가갔다. 어떻게든 윤정한에게 관심받고 싶어서. 정말로 집에 가? 입 밖으로 튀어 나가는 말은 순간적으로 의지를 반영한 게 아니다.

나, 원우랑 술 마셨어.

권순영이 반대편에서 문을 잡는다. 윤정한은 머뭇댄다. 술에 취한 목소리는 눈물에 젖은 것만 같았다. 전원우랑, 걔랑…… 술 마셨다고. 윤정한은 눈물에 약하다. 정확히는 권순영의 눈물에. 그걸 보여준 적은 거의 없지만, 윤정한의 머릿속으로나마 상상해왔던 것.

혀엉…. 급한 일 없었고 전원우랑 놀았다니까?

윤정한은 권순영에 약하다. 우는 권순영을 상상한다. 결국에 문을 열어주고 집 안에 들여, 재웠다. 침대에 누운 권순영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는 다정까지 보여준다. 떠지지 않는 눈을 애써 뜨면서 권순영은 옷깃을 잡아 왔다. 형은 나를 왜……. 거기까지만 말하고 눈을 감았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보이는 맑은 피부. 얼굴. 권순영이 손을 뻗었다. 사랑에 현혹되기 직전. 윤정한은 뭐라고 말을 하긴 했는데. 하지만 여기까지 만이 권순영이 기억하는 모든 것이다.

 

저 멀리서 윤정한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권순영은 다시 한 번 머릴 박는다.

 

 

 

안주 몇 개가 입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권순영은 취하지 않았지만 취한 척을 했다. 그래야 하는 분위기다. 윤정한은 검은 머리를 넘기다 턱을 괸 채 권순영을 쳐다봤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생겼지? 권순영은 괜히 눈을 못 맞춘다. 괜히 테이블을 쓸었다. 술잔에 체리 하나를 떨어트린다. 윤정한이 쳐다본다. 올라오는 거품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운데. 윤정한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어서 등줄기가 땀으로 젖었다. 윤정한은 테이블 위에 둔 권순영의 손을 잡아서 손가락을 입술에 문지른다. 근데 순영아…. 나도 곤란하다? 제 손가락이 윤정한 입술 위를 미끄러진다. 권순영은 조급해진다. 꽂히는 시선에 입술은 메말랐다. 화났어? 나 때문에? 조심스러운 목소리다. 윤정한은 피식 웃는다. 아니. 기분이 개쌉쳐. 그리고 잠깐의 뜸을 들이고는. 너 요새 원우랑 자주 만나? 윤정한은 심장에도 눈이 있어 권순영의 옆구리에 붙어 요동쳤다. 

어… 그러게. 어쩌다 보니.

걔가 좋아?

무슨 말이야. 내가 걔를 왜.

왜? 할 수도 있지. 너 아무나 만나잖아.

이번엔 권순영 손을 볼에 가져다 댄다. 권순영은 작게 기침했다. 저의를 모르겠다. 언제나 가까웠던 윤정한이 처음으로 멀어 보였다. 아. 내가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했네. 우리 둘의 몸을 엉켰던 그 날. 내가 붙잡았어야 하는 건데.

그럼 형도 아무나야?

그러자 윤정한이 흠칫 놀란다. 표정은 금새 처연해졌다. 그럼에도 시선을 떼지 않는다. 다만 권순영의 손등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나는 아니지.

윤정한은 여유롭고 권순영은 애가 탔다. 그리고 예전 이 술집에서, 전원우와의 소모적인 대화가 떠올랐다.

 

'형이 너한테 왜 고백을 안 해?'

'내가 밀어내서.'

'넌 왜 밀어내는데?'

'형을 사랑해서.'

'나랑 반대네. 나는 사랑하면 당기는 타입인데.'

 

윤정한은 구색 맞추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좀 이상한 구색. 벌어지지 않은 일도 미리 과하게 생각해서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게 버릇이다. 윤정한은 권순영이 사라질 가능성을 수백 번이고 예상했다. 그 예상에서 결말은 항상 권순영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거였다.

 

순영아. 내 말에 대답해. 알겠지?

 

그렇기에 차라리 직접 물어볼 셈이다.

 

너는 우리가 무슨 사이냐고 물어볼 수 있잖아. 근데 왜 안 해? 네가 나한테 알려줄 수 있잖아. 나는 고백 처음이라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몰라. 이렇게 말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 그런데 네가 안 하니까, 네가 죽도로 못할 거 같으니까 내가 하는 거야. 네가 못하는 건 내가 대신해. 근데 이게 뭐가 중요해. 첫째. 나는 친구 없어. 사랑도 누구 땜에 잘 안돼. 그러니까 가지 말고. 둘째. 그냥 좀! 영화 보자, 레스토랑 가자, 공원 가자 그런 말을 해. 내가 뭐 더 큰 걸 바라는 게…… 아니잖아.

 

권순영은 오랜만에 당황한 얼굴이었다. 형 오늘 왜 이래. 이때부터 눈물이 좀 차올랐다. 윤정한은 권순영의 볼을 손등으로 쓰다듬었다. 마찰한 부분이 화끈대고 머리가 어지럽다. 근데 좀 좋았다. 권순영 얼굴에. 짜릿했다. 누가 사랑이 기분 좋은 거라 했어. 아프고 야한 것뿐인데.

 

오늘만 그랬어 내가? 나는 항상 이랬어. 나는 너랑 이거 할 때부터 그랬어. 순영이 네 일이라면. 네가 날 온전히 믿지 못하는 거 알아. 아는데 근데 나는 네가 나만 믿게 만들고 싶어. 생겼거든, 욕심이? 그러니까 너 지금처럼 그렇게 살 거면. 너 좋다는 사람 내팽개치고 소갈딱지만한 놈들이랑 만나 며칠 그렇게 힘들게 살거면! 차라리 내 탓하면서 살아. 연애 실패하는 거? 다 나 때문이라고 해. 그래도 돼. 난 훨씬 속 편해. 뭐하러 어렵게 돌아가. 여우짓. 개수작. 뭘 하든 상관없으니까. 넌 내 맘 갖고 놀아도 된다니까. 그런 게 어려워?

 

윤정한의 연설이 끝나자 이번에는 권순영 차례인데 좋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가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권순영은 연애가 젬병이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걸 영원히 믿는 타입. 사랑은 껍질을 까보면 슬픔으로 무장한 무화과였다. 그러니 어떻게 하냐는 입장이다. 숨이 차고 사방이 일렁였다. 휩쓸리지 않아야 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사랑하되 현혹되지 않도록. 사랑하되 사랑하지 않게끔.

 

근데 형 있잖아. 형이랑 나랑 연애하다가 헤어지면 어떡해? 우리 다 헤어져? 이대로 끝나겠지? 뿔뿔이 흩어지면……. 형 우리 망해. 고등학생 때부터 이 회사 들어올 때까지 얼마나. 내가 얼마나. 형이랑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알잖아, 우리를 거쳐 간 많은 사람이 있었잖아. 드럼 치던 유정이는? 영화음악 만든다고 나간 예상이 형. 국수말이 집에서 알바하던 성현이. 걔한테 빌려준 생활비 아직도 기억나. 걔 개명했더라. 새로 바꾼 이름까지 모두 난 좆같이 아직도 기억해. 근데 걔네도 결국 나간 애들이잖아. 남는 건 언제나 나랑 형뿐이야. 난 우리가 영원할 거라고 생각이 안 들어. 하지만 그래도 형은, 나한테 형은 대체 못 해. 나한텐 형이 유일해. 다른 멤버 절대 못 구해. 형 없으면 접을거고 나 형이랑 이거 못하면……!

 

그 뒤에는 괄호를 열었다. (약 먹고 콱 뒤져버릴지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하지만 윤정한은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헤어지면 밴드는 멸망해? 아니. 안 헤어지면 돼. 속으로 대꾸하며 권순영이 하는 짓을 지켜본다. 권순영은 최후의 무기를 쓴다.

 

나는 우리가 졸라 잘됐으면 좋겠어! 그 뿐이야…….

 

그리고는 아기 새처럼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형. 형. 데이트를 하자. 그리고 연애는…

연애는…

제발 하지 말자…….

 

윤정한은 그때 깨달았다. 권순영의 이마에 쓰여 있는 것이 반짝거려서 잘 보였다. 형이랑 헤어지면 내가 누굴 부를 거 같아? 

우리가 사귀다가 헤어지면……. 너는? 윤정한은 최승철 김민규 조슈아를 차례대로 떠올렸다가 종내에 한 생각에 도달한다. 헤어지고 그 뒤에 어떻게 되는지. 나 말고 누구랑 잔 기울이며 털어놓을지. 눈치챘다. 훤히 딱 알겠잖아. 전원우한테 가서 푸념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정한이 형이랑 헤어졌어> 그럼 이 곳에 너랑 전원우 뿐이고 나는 없고. 나는 여기 발길을 끊고. <그래? 슬프진 않아?> 절대 못 오고.

 

<……왜 슬퍼?>

 

정의한다. 너랑 안 사귀는 사이인 것보다 그게 더 끔찍해. 전원우한테 가서 나랑 헤어졌다 하는 거. 죽기보다 싫은 것으로 윤정한 손에 꼽혔다.

 

형. 내가 헤어지지 않을 연애를 할 자신이 없어.

 

권순영은 여전히 울먹인다. 이번엔 자신을 바닥까지 낮춰버리고는 사랑한다고 말한다. 형이 좋아.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형. 나 사실 형이 좋아서 이래. 바보 같지. 울면서 윤정한의 손을 잡아당겨 볼을 부비적거린다. 그렇게 권순영의 크라임존이 크라잉존이 되기까지는 윤정한의 뜻하지 않은 노력이 있었다. 윤정한은 권순영을 단순하게 봤지만 그건 완전히 벗어난 억측. 권순영은 자기도 자기를 모르고 심각하게 복잡했다. 머리가 터져 나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윤정한은 권순영과 겹쳐지는 부분을 발견한다. 둘이 공통적으로 잘하는 게 하나 있다. 애정 있는 섹스를 하고 뒷일은 모른 척하고 죽지 않으려고 사는 거. 살금살금 사는 거.

 

형은 마지막. 내 망할 연애의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 사람. 최후의 보루. (만약 세계가 폭발한대서 터지기 직전이 온다면 그때 형이랑 껴안고 죽여주는 섹스 아 아니 껴안고 살아야지) 권순영 또한 마음속으로 윤정한을 정의했다. 흘끔 시선을 마주한다. 윤정한의 입술이 체리 색이다. 한 번 더 키스를 주세요…. 권순영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형이랑 헤어지면 나는 진짜, 내 인생도 끝날 것 같애. 더는 사랑할 사람이 없고 마음도 없어. 형이랑 헤어지기 싫어. 나 죽어도 싫어. 권순영의 이마에 붙은 앞 머리카락들을 하나씩 떼어내며 윤정한은 전원우를 떠올렸다. 권순영의 얼굴 위로 겹쳐지는 유미주의자. 내 사랑이 어떤 형태가 되든 너희는 그 마음을 계속 지킬 수 있을까.

 

원우때문에 나를 이용해보고 싶은 건 아니고? 나랑 사귀면 원우 반응이 보고 싶어서. 아니야?

진짜 아니야 형. 사랑해. 나는 형 사랑해…….

 

윤정한은 드디어 원하는 답을 들었다.

 

<근데 너 우는 얼굴도 귀엽다!>

 

이다음에는 무슨 말을 들어도 상관이 없다. 윤정한은 권순영이 떨어트리는 새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쳐낸다. 그 눈에 키스를 갈긴다.

 

실장님이 곧 숙소 생활 하자는데. 우리 못 헤어지게 하려고 세상이 노력하는 거 같지?

 

미쳤나 봐. 권순영은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도 마지막 장이겠지. 기울어지는 술집에서 권순영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윤정한이 그 어깨를 붙잡았다. 권순영. 순영아. 사랑이 뭐지. 도대체 뭔데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걸까. 전원우는 어떡하지. 나 사실 걔가 신경 쓰여. 너도 그렇지 않아? 그렇지만. 그치만 넌 나 때문에 평생 연애 못 한다고 해야 해. 그래 줄 거지? 이제 누구도 못 만난다고 해. 네 옆에 나 빼고 아무도 두지 않겠다고 해. 아무하고도 연애하지 말고 나와 일생을 함께 있을 거라고 해. 그게 네 목표라고 해. 알았지? 내일 아침에도 전화할 테니까 무조건 받아. 그리고 넌 이걸 욕심이라 해서는 안 돼.

 

술이 살짝 묻은 손가락으로 권순영을 떠보는 윤정한. 그런데 조금 뒤. 권순영은 아연실색했다. 권순영이 대답할 것처럼 고갤 들은 이유는 윤정한이 어느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었다.

 

전원우…….

 

전원우는 차가운 인상이었다. 비를 맞아서 살갗은 투명했다. 윤정한은 피식 웃는다. 윤정한의 왼쪽 손목 안쪽은 뱀의 피부다. 뱀 무늬로 갈라진 가죽. 전원우와 권순영 중에서 전원우만이 그걸 알고 있다. 마치 짜여진 것처럼 굴러가는 대본. 권순영은 두려움에 떨었다. 윤정한이 턱을 괸다. 알코올은 혀에 깊숙이 침투했다. 사랑하는 동생아. 넌 진짜 왕재수야. 여기 왜 왔어? 느긋하게 묻는다. 웃음도 끼어서. 그러자 전원우가 자연스럽게 권순영을 본다.

 

형이 약해졌을 때 오면 받아주나 싶어서.

 

그 후로는 깜깜했다. 아. 왜 머리가 도냐. 썩을. 윤정한은 박장대소한다. 아… 미치겠네. 차라리 내 인생의 결말을 네가 정해줬으면 좋겠다, 원우야.

원우야? 권순영의 안심이 기포가 되어 사라져버리는 순간이었다. 권순영은 여전히 의지박약을 혐오하고 윤정한은 리스트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권순영은 자기 자신을 리스트에 올린다. 힘이 빠진다. 순식간에 더 울고 싶어져서는…… 권순영의 두 눈이 가려졌는데도 그 당시 윤정한의 표정이 어땠는지 권순영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기억했다. 별이 없어질 때까지. 전원우가 술잔을 건네는 모습 뒤로 저무는 회색빛 사라질 그림자. 농익은 조명. 살아있는 건 기이한 이 술집의 수증기뿐인……. 그 순간 술집 주인이 고독한 목소리로 말한다. 원래 사람은 내쫓기기 직전에 가장 권력이 세지는 동물이라네.

 

차 가져왔어. 태워 줄게.

 

셋은 비바람이 부는 밖으로 나왔다. 물이 가득 굴러가는 도로는 잠시 후면 바다가 될 기세였다. 우리는 비틀대며 서로의 손을 잡았다. 바닥이 기울어진다. 지구가 무너지나 보다. 필사적으로 옆 사람을 껴안으며 나는 속삭였다. 형. 형 원우랑 닮았다. 얘도 사랑하면. 사랑하면 형처럼 한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몰아치는 바람을 따라 내 눈동자에는 윤정한과 전원우가 들어섰고 나는 그때부터, 이따금씩, 여전히, 지속해서 직감했다. 뒤집힌 스티커를 붙인 저 차를 앞으로도 오래오래 탈것만 같아.

 

 

 

 

올어바웃스페이스 @보컬 기타 최승철  드럼 김민규  건반 조슈아  베이스 윤정한  리드기타 권순영